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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98번째 편지] 강화도의 강과 바다에서 띄우는 파란 엽서 한 장 - 배기표 2026. 08. 21.2026-08-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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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98번째 편지]

 

강화도의 강과 바다에서 띄우는 파란 엽서 한 장

 

 

얼마 전, 더불어숲 벗들과 함께 한홍구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고 강화도로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기행은 더불어숲의 청소년 프로그램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철산리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북녘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해 고려궁지와 성공회성당, 광성보를 거쳐 정제두 선생과 이건창 선생의 묘역을 참배하고, 하일리 바다를 마주하는 꽉 찬 일정이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이 느껴졌습니다. 남과 북의 강물이 경계 없이 섞여 바다로 흘러드는 곳, 손 뻗으면 닿을 듯 북녘땅이

건너다보이는 이 분단의 최전선에서 강화의 풍경은 참으로 복잡한 감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이번 기행은 조선 말기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생애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광성보의 성곽과 강화해협의 빠른 물살을 바라보며 신미양요 당시 민초들의 고난과 투쟁을 되새겼고,

시대의 아픔을 꼿꼿하게 통과해 낸 강화학파 정제두, 이건창 선생의 묘역 앞에서는 오늘을 사는 지식인과 시민의 책무가 무엇인지 다시금 묻게 되었습니다.

 

그 격랑의 현장들을 지나 우리의 발걸음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하일리 바닷가였습니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둘러앉아 작은 엽서 한 장씩을 꺼내어 각자의 마음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쇠귀 선생님께서

『나무야 나무야』의 맨 마지막에 남겨두신 글귀를 이번 기행에 동행한 두 명의 학생이 낭독했습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마지막 엽서를 앞에 놓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엽서 대신 파란 색종이 한 장을 띄우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언젠가 이곳에 서서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중략)

나는 마지막 엽서를 당신이 내게 띄울 몫으로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나갑니다. 강물이 바다에게 띄우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남겨두신 마지막 엽서는 우리가 바다에 띄울 이야기를 적어 보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굽이쳐 마침내 하나의 바다로 섞여드는 이곳 강화도야말로 강물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을 생각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자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철책이 가로막고 서로를 향한 적대감으로 날을 세우고 있는 현실이지만,

우리는 그 바다 앞에서 엽서에 평화와 연대의 다짐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과거 외세의 충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아픈 기억을 넘어,

분단이라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도 우리가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철산리의 강과 바다' 중)

 

앞으로 청년, 학생들과 함께 이 강화도의 여정을 다시 걷고 싶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에서 선생님의 글을 함께 읽고,

각자의 작은 엽서에 시대의 고민과 희망을 적어 내려가며 ‘최후의 목적’으로서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이곳 강화도의 강과 바다에서 만나 띄운 엽서들이 모여, 언젠가 가장 낮고 가장 평화로운 바다에 가닿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더불어숲 회원 배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