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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95번째 편지] 별 앞의 부끄러움 - 김정진 2026. 07. 31.2026-07-3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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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95번째 편지]

 

                                                    별 앞의 부끄러움

 

"활을 쏘아서 과녁에 적중시키지 못했을 때는 적중하지 못한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아야 합니다(反求諸己).

자기의 활 쏘는 자세를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반구저기의 자세란 우리를, 나를, 내부를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의 원인은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자기반성(自己反省)이 자기 합리화나 자위(自慰)보다 차원이 높은 생명 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위는 생명이 괴로움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기존 상황을 합리화하고 전체 구도를 보수화하는 자위보다는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자기비판이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더 높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작은 실패를 간과하지 않는 자기비판의 자세입니다.

실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며, 실패가 값진 것이 아니라 실패의 교훈이 값진

것입니다. 실패와 그 실패의 발견은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이나 결론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의 반성적 자세입니다.

무슨 일에서건 항상 최선의 결론을 얻으려 하는 안이한 자세를 반성해야 합니다.

각자의 처지에서 부단히 고민하며 하나하나 쌓아가는 매일매일의 노력, 그 이상의 최선은 없습니다.“

 

                                                                          『담론』과『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신영복 선생님은 반성의 본질을

'반구저기(反求諸己)'에서 찾으신다. 이는 맹자 『이루편』의 '행유부득자 개반구저기(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에서

온 말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원인을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라.'라는 가르침이다.

선생님은 이를 궁사에 비유한다. 화살이 과녁을 벗어났다면 그 원인을, 활을 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구저기의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대한민국 양궁이다.

우리나라는 1984년 LA 올림픽 양궁대회 우승 이후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해 왔다.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 비결은 어떤 환경에서도 과녁을 맞힐 수 있는 집중력과 체계적 훈련에 있다고 한다. 실패를 분석하고

반복훈련을 이어가는 반성적 자기 훈련이 어떤 상황에도 과녁의 정중앙을 맞힐 수 있는 자세의 밑거름이다.

환경적 요인을 탓하는 것은 자위에 그치고 더 나은 다음을 위한 반성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반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시가 윤동주의 <서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코람데오(Coram Deo)'를 연상시킨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의 라틴어다. 시인의 이 마음은 종교를 넘어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순결한

윤리의식처럼 느껴진다.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은 작은 흔들림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의 자세야말로

자기반성의 극치다. 마치 코람데오의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욕망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명제처럼, 타인과 비교하며 만족을 모르고 부끄러움을 놓아버린 채 비루해지는 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이러한 현대인의 속물적인 무감각을 아프게 드러내는 소설이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이다.

부끄러움에 민감한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실리만을 추구하는 남편과 허영심 가득한 동창들에게 환멸을

느끼곤 한다. 어느 날 일본 관광객 앞에서 지나치게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여행 안내원을 보며,

부끄러움을 잊은 사회가 부끄럽다고 각성한다.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부끄러움 수업'이 아닐까 싶다.

 

맹자는 인간에게는 네 가지 선한 마음인 '사단(四端)'의 본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羞),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惡) 마음이다.

반성조차도 자기 성공을 위한 잘못의 시정 정도로 단세포화된 요즈음, 이러한 본성을 깨우는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반성은 성찰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반성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자기 점검이라면,

성찰은 자신을 넘어 타인과 사회, 삶의 의미까지 사유를 확장한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 속에서

시인은 옳음을 선택하고, 쓰러져가는 민족에 아파하며 나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다.

반성과 성찰을 넘은 결단의 자세이다.

 

인간에게 별은 현실을 이겨낼 이상과 꿈을 의미한다. 칸트가 『실천이성비판』 말미에 남긴 유명한 문장인

"내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 생각난다. 윤동주에게 '별'은 칸트의 '별'처럼 인간을

이상으로 이끄는 표상일 것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별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결기로 느껴진다. 타인을 의식하는 의협심이 아니라 시인이 세운 옳은 길에 비추어 사는 진실한 삶이 아리게

다가온다.

 

부끄러움은 반성과 성찰의 출발점이다. 부끄러움이 착함만큼이나 미덕에서 멀어지고 있는 요즈음,

우리는 부끄러움, 수오지심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교육의 주요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끄러움은 인간을 작아지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일으켜 세우는 양심의 힘이다.

오늘 밤, 윤동주 시인이 별을 보며 걸었을 부암동 시인의 언덕에 오르고 싶다. 별 앞에 서서 나의 부끄러움을

마주하련다. 그 부끄러움이 나의 삶을 더 나은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숲 회원 김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