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93번째 편지]
기억하기, 진실 말하기
“묵가가 진단한 당대 사회는 무도하고 불안한 사회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다수는 소수자를 겁박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귀족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고, 간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인다.
세상은 화찬(禍篡)과 원한으로 가득 차 있다. ..(중략)...
근본적 해결 방법은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자의‘겸애’ 사상입니다. 겸애는 기본적으로 계급철폐의 평등사상입니다”
“묵자는 천하를 이롭게 하려면 겸상애(兼想愛) 교상리(交相利)의 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략)..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묵자는 오늘날의 당면 과제인 연대와 상생을 일찌감치 내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담론』‘이웃을 내 몸같이’에서
배재고 교문 앞에 놓인 화환을 보면서 어째서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분열의 언어, 혐오와 증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혐오와 무시, 조롱과 차별, 억압과 폭력의 언어들이 습기 가득한 지하에서
어느새 지상으로 올라와 거리낌없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한번 내뱉어진 ‘혐오와 증오’가 다시 ‘혐오와 증오’를
부르고 있는 이 현실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주지하듯 ‘혐오와 증오’는 민주와 인본주의의 적이며 창의와 다양성을 무시하는 일방주의 문화의 산물입니다.
단순히 ‘네가 싫다’라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를 차단하고 조직화하여, 타인을 배척하고 차별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의 안전망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인간성을 훼손하는 반사회적 언어이자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묵자의 ‘겸애’ 사상이 기본적으로 계급 철폐의 평등사상이고, 묵자가‘연대와 상생’의 과제를
일찍 세상에 내놓았다고 평가하십니다. 인류사는 묵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변혁의 맹아를 싹틔우고, 대중이 많은
희생을 감내함으로써 불평등과 차별에 대항하여 민주와 인권의 개념을 정착시켜 온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불평등성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아류로서 신자유주의와 트럼피즘,
이에 기반한 ‘혐오와 증오’ 문화가 세상을 빠른 속도로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 카롤린 엠케는 우익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소수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보적 가치관을 물리치기 위한 수단으로 ‘혐오와 증오’를 이용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차별주의자, 우익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증폭시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신들은 안무가일 뿐이며 춤을 추는 것은 남들에게 맡긴다.”(카롤린 엠케 『혐오 사회』 2026)
혐오와 증오의 언어들은 맥락 없이 특정 주장을 연결하여 단순히 반복하는 것(프레임,밈)으로 상대의 정서를 왜곡,
장악하여 정치적, 금전적 이익이나 쾌락을 취하고자 하므로 악(惡)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극우에 맞서 진보 역시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코끼리는 생각하지마!』 2015). 이에 비해 카롤린 엠케는 증오에 증오로 맞설 순 없다며 이럴수록
‘기억하기’와 ‘진실 말하기’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혐오와 증오를 방관하거나 침묵할 때 사실을 기억하고 진실을
말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꺼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억과 진실에 기반한 ‘연대동맹’을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빠르고 편리한 세상이지만 제한된 시각으로 제한된 정보만을 취득하고,
타인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착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수정하지 않으며,
잘못된 정보를 신념화하고 그것을 혐오와 증오로 표현하며, 단단한 벽을 세워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둡니다.
(물론 나 역시 스스로 그러한 지도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벽들을 부수는 망치가 필요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관계론에 기반해 보면 ‘연대’란 힘을 모아야 할 사람들의 ‘관계’이며, ‘상생’은 그 관계를 만드는
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더욱 ‘연대와 상생’의 망치로 ‘혐오와 증오’의 벽에
과감히 맞서라고 하실 것만 같습니다.
- 더불어숲 회원 허 병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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