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92 번째 편지]
되돌아보는 일에 대하여
신영복 선생님의 학문과 삶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관계론’입니다.
선생님은 서구 중심의 근대성이 가진 ‘개인주의’와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동양 고전의 지혜를 빌려 관계론을 제시했습니다. 서구의 근대 철학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독립된 개개인의 '존재(Being)'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선생님은 '관계(Relationship)'가 존재를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나'라는 사람은 고정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내가 부모, 친구, 사회,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의 총합이라는 뜻입니다. 한자 인간(人間)을 예로 들면 사람은 홀로 서 있는 '人'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間)'에 존재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본 것이지요.
이러한 ‘관계성’을 깨닫는 한 방법으로 ‘성찰(省察)’을 강조하셨습니다.
“성찰이란 나와 다른 사람, 나와 세계의 관계성을 깨닫는 것이고,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가 맺고 있는
관계성을 각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배타적인 존재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다른 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닫는 것이 성찰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관계성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있는 인디언의 예를 들기도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말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립니다.
공부는 영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처음처럼>
한국은 구한말 세계사의 흐름에 뒤처지면서 이후 일제 강점 시기와 전쟁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절을 겪었습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방 이후 가장 빠르게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어 내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오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물질만능, 경쟁과 능력주의, 생명 경시,
인륜 도덕의 피폐화입니다. 인디언처럼 한 번씩 말을 멈추고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되돌아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영혼이야 따라오든 말든 물신을 섬기고 잘만 살면 된다는 천박한 사회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최근의 스타벅스와 쿠팡 사태도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사전에서 성(省)자는 ‘적을 소(少)’와 ‘눈 목(目)’의 결합으로 나옵니다.
작고 세세한 부분까지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성이라는 말입니다. 또 갑골문에서는 目자 위로
‘날 생(生)’자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초목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본래 省자는 작물이 자라는지를 살펴본다는 의미였던 것이지요. 작물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거름은 잘 주었는지, 뿌리는 견고한지, 잎을 보고 앞으로 문제가 없겠는지 늘 고심합니다.
한 해의 열매를 보고도 내년에는 무엇을 고쳐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것이 성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제대로 성찰하고 있을까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질주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열심히 뛰어가고 있지만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갈수록 목표와는 더 멀어집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붓글씨로 자주 쓰신 고 민영규 선생님의 글 ‘떨리는 지남철’도 그러한 위험을 경계한 것입니다.
방향이 맞는지 살피지 않고 기존의 방식만 고수한다면 결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붓글씨를 가르치는 저는 초심자들에게 기본 필법의 하나로 삼절법(三折法)을 가르칩니다.
획을 한번 그을 때 세 번(사실 횟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끊어서 전진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간중간에 붓이 중봉을 유지하고 정렬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이 삼절법이 인생살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절법은 뒤돌아보는 것입니다.
붓끝이 획의 중앙에 제대로 위치해 있는지, 붓이 너무 눕거나 눌려있지 않는지,
획이 제대로 전진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보이면 잠시 가던
붓을 멈춰 세우고 다시 정리하고 바로 세운 다음에 또 나갑니다. 사람의 일생에서도 이런 과정과 순간들이
필요합니다. 내가 제대로 살아오고 있는지, 지금 내 자세는 바르게 되어 있는지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붓글씨를 통해서도 삶을 배웁니다.
뒤돌아본다는 것은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비효율 혹은 뒤처짐으로까지 인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늦게 가는 일이 있더라도 때때로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더디 가도 함께 가야 합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써 보았던 붓글씨의 글귀로 마무리합니다.
“성찰과 각성,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입니다.”
-더불어숲 서여회원 두메 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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