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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68번째 편지] 신영복 선생님 10주기 추모 설교 - 성공회대 차피득 신부님 2026. 01. 22.2026-01-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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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68번째 편지]

신영복 선생님 10주기 추모 설교

- 성공회대학교 차피득 신부님

 

오늘 우리는 고 신영복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아 여기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이라는 가장 닫힌 공간 속에서, 가장 넓은 세계를 사유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입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 문장은 선생님의 삶 전체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홀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서, 함께 엮이며, 서로에게 열릴 때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이 사유는 예수의 언어와 매우 닮았습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희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예수에게 인간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언제나 타자의 얼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흔히 오해합니다.

부활을 ‘죽은 몸이 다시 소생하는 사건’으로만 이해하면, 부활은 과거의 기적에 머물고 맙니다.

복음서가 증언하는 부활은 다릅니다.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를 즉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갈릴리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스승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이란,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넘어, 절망 속에서 관계가 다시 열리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상처 입은 공동체가 다시 서로를 부르는 사건이며, 두려움 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시신의 회복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평생 ‘관계’를 사유했습니다.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연대, 지배가 아니라 공존을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부활의 언어입니다.

부활은 폭력과 배제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습니다. 공동체는 붕괴하였습니다.

그때 부활은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평화의 인사는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부름입니다. 부활이란, “다시 연결되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부활은 과거에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절망 속에서 다시 타인을 신뢰할 때, 미움 대신 손을 내밀 때, 배제된 사람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올 때,

폭력 대신 연대가 선택될 때, 그때마다 부활은 일어납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글을 썼던 순간들, 그것이 부활이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의 패배를 사랑의 관계로 전환했던 그 사건, 그것이 부활이었습니다.

 

신앙은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을 냉소하지 않았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부활을 믿은 사람이 아니라, 부활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어떤 관계를 선택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선택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은 머리로만 상상하는 공허한 언어가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가 선택하는 관계 속에서 시작됩니다.

증오 대신 이해를, 경쟁 대신 연대를, 무관심 대신 책임을 선택할 때, 우리는 부활의 사람이 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위로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남긴 것도 기적이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부활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오늘 이 추모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부활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연대를, 사람됨을 선택함으로 부활의 주체로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그 결단 속에서, 신영복 선생님도, 예수도, 그리고 부활도 지금 여기 살아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