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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60번째 편지] 정체성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 -노병준 2025. 11. 072025-11-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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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60번째 편지]

 

                                 정체성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본질에 있어서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being)입니다. 관계의 조직은 존재를 생성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그리고 생성은 화화(和化)의 경로를 따라 탈주하는 것입니다. 탈주는 끊임없는 해체와 새로운 조직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관계’를 일반적 의미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과연 존재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사물들이 맺고 있는 얼개 자체에 존재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어떠한 사물이든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를 관계라는 객관적 얼개 속으로 해소시키는 것 역시 관념론이 됩니다.

 

<담론> 신영복, 돌베개

 

 

 

제 일터에는 소수의 사무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과 고객을 대면하는 현장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다수의 인력이 근무합니다. 사무 행정 업무는 주로 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일터의 인력과 시설 등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관리는 지휘부의 역할뿐만 아니라 현장에 대한 지원이라는 기능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상 사무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일부 인력은 자신의 정체성을, 현장 근무자의 상위에서 지휘하는 관리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장 근무자들을 통제와 관리받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상사와 부하의 관계처럼 근무 인력 간 업무와 역할의 차이임에도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하의 수직적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될 때마다 사무 행정 근무자들에게 기존의 관리자 역할을 넘어 현장 근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자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항상 느끼지만, 저부터 상사이자 관리자의 위치에서 기존의 관계들을 해체하고 새롭게 조직해야 그들도 스스로 지원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올해 근무 기간이 끝날 무렵이면 사무실과 현장에서 같이 일해 준 동료들에게 함께 나눈 우정과 경험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고마움을 전해야겠습니다.

 

[더불어숲 회원 노병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