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샘터찬물 461번째 편지]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 서기용 2025. 11. 13.2025-11-14 15:42
작성자

[샘터찬물 461번째 편지]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추유황색(秋有黃色). 들국화가 겨울 옷매무새를 채비하느라

금빛 단추를 여민다는 고인(古人)들의 추정(秋情)은 묵향 바랜 시편에나 남았을 뿐,

농약과 화학비료에 얼룩진 벌판에 허수아비는 비닐옷을 입어 풍우를 근심 않는다던가...

 

가까이 국화 한 송이 없어도 가을은 다만 높은 하늘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비좁은 생각의 궤적을 일탈하여 창공 높은 곳에서 자신의 주소(住所)를 조감하게 되는 계절입니다.

 

사과장수는 사과나무가 아니면서 사과를 팔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정직을 파는 세로(世路)에서,

발파멱월(撥波覓月) 강물을 헤쳐서 달을 찾고, 우산을 먼저 보고 비를 나중 보는 어리석음이 부끄러워지는 계절ㅡ

남들의 세상에 세 들어 살 듯 낮게 살아온 사람들 틈바구니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가을이면 먼저 어리석은 지혜의 껍질들은 낙엽처럼 떨고 싶습니다.

군자여향(君子如響), 종소리처럼 묻는 말에 대답하며 빈 몸으로 서고 싶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 중에서

 

 

가을 추수를 마치고 복숭아나무랑 포도나무에 퇴비를 뿌렸습니다.

한해 고생한 나무들 하나하나에 고맙다는 말 건네며 정성스레 뿌려주었습니다.

내년에도 올해처럼만 도와주기를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점심때는 너른 마당에서 배차전을 부쳐 이웃집 형님과 즐겁게 나눠 먹었습니다.

배차전을 먹다 앞산을 유연히 바라보았습니다.

단풍 든 도토리나무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잎들을 모두 떨어낸 도토리나무들은 이제 조용히 겨울 햇살과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이제는 나도 수많은 SNS의 알림과 지키지도 못할 허황한 소음들에 귀를 닫고

조용히 내면으로 침잠(沈潛)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뜨문뜨문 메아리로 울리는 고요한 산처럼 자신의 소리를 줄이고

이웃들과 자연의 진실한 소리에 가만히 귀를 열고 대답하는,

여유롭고 여운(餘韻)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더불어숲 회원 서기용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