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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56번째 편지] 어느 고등학생의 질문 - 배기표 2025. 10. 102025-10-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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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56번째 편지]

                                  어느 고등학생의 질문

 

안녕하세요, 남해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학년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독서 토론과 글쓰기' 교과목 시간에 신영복 선생님의 "티브이는 무대보다 못하고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합니다."라는 기행문을 읽고,

토의를 하는 활동을 진행하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들었으나, 저희 학생들 수준에서는 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자문하고자 연락을 드립니다.

 

우선 신영복 선생님께서 이 글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자 하셨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직접적인 인간의 경험과 관계, 살아 있는 현실 그 자체를 표현하는 삶의 현장. 배우들이 직접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현장성 있는 표현 공간이지만,

여전히 연출과 각본에 의해 제한된 세계인 무대. 그리고 삶을 간접적으로 비추는 매개된 매체, 즉 기록이나 편집을 통해 보여주는 이차적 재현물인 티브이.

각각의 대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위와 같이 이해할 수 있었고, 저희 학생들 역시 충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학생들은 신영복 선생님의 어떤 경험이 위와 같은 명제와 깨달음으로 귀결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중간 과정을 거쳐 위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신 건지, 기행문만을 읽고서는 사실 연결 짓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여 1학년 학생들을 대표하여 신영복 선생님께서 디오니소스 극장을 방문하신 경험과 삶의 현장, 무대, 티브이를 활용하여 명제를 도출해 내신 중간 과정을 여쭙고 싶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숲』을 깊이 있게 읽고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 남해고등학교 1학년 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정확히 이해하셨고,

그 깨달음이 도출되는 '중간 과정'을 묻는 말은 매우 구체적이고 높은 수준의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명제, 즉 "TV는 무대보다 못하고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하는 법입니다"라는

깨달음이 디오니소스 극장 경험을 통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그 연결 고리에 관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임을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세 가지 층위의 관계 (The Hierarchy)

학생 여러분이 이미 정확히 파악했듯이, 신영복 선생님은 세 가지 대상의 '현장성(직접성)과 진정성을 기준으로 그것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가) 삶의 현장: 가장 본질적이고 정직한 실재. 살아있는 사람과 관계가 실존하는 곳.

(나) 무대: 배우의 육성과 행위가 직접 전달되는 현장성이 있음. 연출과 각본에 의해 제한된 세계 (가상의 이야기).

(다) TV: 기록과 편집을 거친 이차적 재현물(간접적 매개, 현장성 부재).

    이처럼 무대는 TV보다 낫지만 (현장성), 삶의 현장보다 못함. (진정성/본질성).

    신영복 선생님은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무대가 가진 힘을 인정하면서도, 무대가 가진 한계를 성찰하며 최종 결론인 '삶의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2. 깨달음의 중간 과정: 무대의 한계와 배우의 통곡

선생님의 최종 명제가 도출되는 결정적인 중간 과정은 바로 '무대 위의 삶'이 '현실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자각입니다.

이 지점을 이해하는 데는 선생님의 또 다른 저서인 『나무야나무야』에 나오는 '통곡하는 배우' 이야기가 강력한 보충 설명이 됩니다.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와 함께 막이 내리면 그는 홀로 분장실에 남아 통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그의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갈채는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통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왜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무대 위의 그림자를 살고 있는가?’ 이것이 통곡의 이유였다고 하였습니다.

텅 빈 분장실에 홀로 남아 쏟아내는 그의 통곡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통곡은 그를 인간으로 세워놓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무야나무야』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언급하는 '통곡하는 배우'는 바로 이 무대의 한계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갈채는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통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왜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무대 위의 그림자를 살고 있는가?’ 이것이 통곡의 이유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배우의 통곡은 다음 두 가지를 분명히 증명합니다.

무대는 그림자다: 무대 위의 삶이 아무리 진실해 보여도, 그것은 진짜 주인공의 그림자(재현)'일 뿐입니다.

배우가 진정으로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무대 위의 갈채'가 아니라, 드라마 속 주인공이 겪는 '삶의 현장' 그 자체입니다.

 

3. 결론 사람과의 관계, 현실로 돌아가기

결국 선생님은 무대에서 발견한 '환상(가상)의 한계'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정직하고 의미 있는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는 곳은 꾸며낸 무대나 편집된 TV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진짜 삶의 현장임을 재확인합니다.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합니다:

무대가 아무리 감동을 줄지라도, 그 감동은 현실의 고통과 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지식과 가치는 오직 현실 속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선생님의 철학이 이처럼 '무대의 한계'를 통해 명확해집니다.

 

훌륭한 질문과 깊은 성찰을 보여준 남해고 학생들의 건투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삶의 현장'에 발 딛고 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멋진 학생들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더불어숲 이사 배기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