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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44번째 편지] 실위(失位)이더라도 응(應)이면 무구(無咎) 2025. 07. 182025-07-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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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44번째 편지]

 

                           실위(失位)이더라도 응(應)이면 무구(無咎)

 
『주역』사상에서는 위보다 응을 더 중요한 개념으로 칩니다. 이를테면 ‘위’位의 개념이 개체 단위의 관계론이라면 ‘응’應의 개념은 개체와 개체가 이루어내는 관계론입니다. 이를테면 개체 간의 사회적 관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위가 개인적 관점이라면 응은 사회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보다는 상위개념입니다. 그래서 실위失位도 허물이요 불응不應도 허물이지만 실위이더라도 응이면 무구無咎로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보다 응을 상위에 놓는 것이『주역』의 사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도처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집이 좋은 것보다 이웃이 좋은 것이 훨씬 더 큰 복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산다는 것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보면 응의 문제는 곧 삶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가 소유所有의 개념이라면, 응은 덕德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로 응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 <강의 교재 2014 인문학 특강> 중에서
 


  대통령의 자리를 잃고 구치소에 수감된 사람이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자신의 지난 담화가 무색하게 특검의 조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특검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괴담으로 치부되던 격노설을 비롯해 은폐되었던 전직 대통령 관련 문제들에 대해 부하 직원들이 기존 입장을 바꿔 진술하자 그는 점점 구치소 독방보다 더 좁은 궁색한 처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자신이 대통령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처신하려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처한 작금의 상황이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잃은 실위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주역의 가르침처럼 그것은 국민들과 진솔한 소통을 외면하고 신뢰를 잃은 불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 정부의 장관 직위를 얻으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최근 인사청문회를 통해 자신과 함께 했던 이들과 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장관 후보자들은 눈앞의 위를 얻는 것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응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임을, 가까이에 있는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무감어수無鑑於水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합니다. 

 

                                                                                                                        [더불어숲 회원 노병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