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03. 23. 샘터찬물 편지 - 21 봄꽃 "언덕에 봄꽃을 피우고 있는 섬진강도 강물은 아직 차디찹니다. 강물에 조용히 손 담그면 팔뚝을 타고 오르는 한기가 아픈 추억과 함께 전율처럼 가슴을 엡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는 동시에 자신의 추억을 돌이켜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작은 봄꽃 한 송이를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야 합니다. 하물며 비뚤어진 우리들의 삶을 바로잡는 일 없이 세상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킴으로써 완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처음처럼』, 65면. 산에 언덕에 봄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1969년 1월 청년 신영복은 사형선고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그의 짧은 인생을 정리합니다.독재에 항거하다 잡혀와 찬란한 햇살 아래 총살형으로 장렬하게 스러져갈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을 앞두고 지나온 날들을 회상합니다. 66년 봄 서오릉 소풍길에서 만난 청구회 어린이들, 어쩌면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꼬마 친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도소의 마룻바닥에 엎드려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에 이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록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은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엔딩 크레딧입니다. 청년 사형수의 작은 희망이었습니다. 올해도 진달래 꽃길에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