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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7. 03. 02. 샘터찬물 편지 - 182017-03-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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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3. 02. 샘터찬물 편지- 18

 

양심

 

"물 탄 피(和水血)의 이야기입니다.

대학병원에서 피를 팔기 전에 매번 찬물을 잔뜩 들이키고 나서 채혈실로 들어갔다는 어느 친구의 기억이 강물처럼 가슴에 흘러듭니다. 

하루의 일당을 받지 못하는 날이면 집에 들어갈 얼굴이 없어서 합숙소에 들어 밤잠을 자고 새벽 일찍 대학병원으로 달려가 피를 팔고 그 돈으로 동생들의 끼니를 사서 집으로 들어가는 그런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어둑새벽 대학병원의 수도꼭지에서 양껏 찬물을 들이키는 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자기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는 그의 단호하고도 위악적(僞惡的)인 표정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단호한 어조와 그 침통한 표정에서 그것은 그가 상당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는 반어(反語)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들이킨 물이 곧장 혈관으로 들어가 피를 묽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그의 가난한 지식이 마음 아픕니다. 

 

그는 동생들의 끼니를 위하여 좀 더 많은 피를 만들려고 했던 형이었고, 그리고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좀 더 많은 피를 남기려 했던 노동자였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설령 그가 들이킨 새벽 찬물이 곧바로 혈관으로 들어가 그의 피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얻는 부당이득의 용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나무야 나무야》중에서.

 

'도의적 책임'이란 말이 '양심'과 같거나 비슷한 말인 줄 알았는데, 최근 전혀 다르게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국정 농단의 피의자들은 기소된 혐의의 물증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주장하며,

'도의적 책임'은 지겠다고 합니다.

법적 형벌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그럴싸한 위선의 증표로 쓰이고 있습니다.

뻔뻔함의 극치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기방어의 최대치입니다.

 

민중의 역량으로 수많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오늘과 내일의 사회에서는 '양심' 또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이 

법보다 더 엄정(嚴正)한 무게로 양심을 따르는 지식인과 굳은 심지(心地) 하나 의지하고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등불'이 되어주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