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506번째 편지]
영화 <가능한 사랑>을 보고
영화 '가능한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예고편과 관련 영상을 보면서 이 영화는 신영복 선생님의 관계론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표를 예매하고 나서『담론』 책을 다시 펼쳐가며 영화에서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영화를 준비했다가 접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그들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까운가?”
이런 질문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영화감독 자신의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어떻겠냐는 작가의 제안에 따라 영화는 다시 제작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인 예지는 이창동 감독의 분신으로 나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세상에 알리고 연대하려는 숭고한 사명감이 있습니다.”
면접관이 물은 영화 제작 의도에 대한 예지의 답입니다.
물론 예지에게는 이창동 감독이 갖고자 했던 망설임, 자기 성찰이 빠져있습니다.
신영복의 여행은 타자의 삶에 관계하고 그의 삶에 공감하고 그를 통해 실천하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각자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존재의 상태에서 관계를 맺으며
내가 변해가는 과정이 여행입니다. -『처음읽는 신영복』 17쪽에서
예지는 미옥을 통해 해고 노동자의 삶을 담아보려고 하지만, 미옥이 보여주는 마스크 공장의 반복적이고
따분한 노동은 예지가 원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고통이 담겨있는 임팩트 있는 장면입니다.
예지는 미옥의 삶에 관심을 보이지만, 미옥과의 관계 속에서 예지 자신이 변하려고 하는 마음은 없어 보입니다.
“그들하고 너는 다른데, 너 지금 메소드 연기하고 있어.”
“아니야,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하는 거야.”
라는 상우와 예지의 대화 속에서 우린 예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뷰파인더를 통해 상대를 바라보며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예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 중간 어디에선가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화평론가 라이너는 수전 손택의 말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타인의 고통받는 장면을 마주하면서 슬퍼하고 위로를 건네지만,
실제로는 ‘나는 저 비극의 가해자가 아니다. 나는 안전한 곳에 있다’라는 안도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타인의
고통을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보낸 숱한 위로와 공감이 단지 가해자가 아니라는 알리바이로,
안도감을 확인하는 수단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자잘한 실천이 나 자신의 변화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통절한 반성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옥의 남편 호석은 해고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내입니다. 해고보다 더 큰 고통은 관계의 단절로부터 오는
아픔인 것 같습니다. 숲에서 쫓겨난 고립된 개인의 아픔에 대해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읽혔습니다.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 있습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 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관계야말로 최고의 관계입니다. 입장의 동일함을 좁은 의미로 읽지 않기 바랍니다.
-『담론』284쪽에서
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관계의 최고 형태에 대해 자꾸 말을 바꾸시는 게 아닌가? 하는 의아함이 있었습니다.
입장의 동일함,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관계,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하도록 이끌어 주는 관계.
최고는 하나가 아닌가?
입장이 동일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층위의 관계를 맺는 건 아니라는 걸 해고된 호석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고된 호석 곁에 호석을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가 남아 있었다면 고립된 개인으로 맞이하는
고통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좀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어떤 관계로 서 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예지의 남편 상우는 너무나도 근사한 사람입니다. 예지처럼 값비싼 가방이나 옷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아우라와 친절한 미소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성격도 멋집니다. 우리가 현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자본의
모습이 그러하듯이. 그렇지만 경계가 분명합니다. 아내인 예지 또한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난한 세탁소집 딸 예지와 결혼한 이유부터가 남다릅니다.
마지막 쇼킹한 결말은 여기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미옥과 예지는 과연 따뜻하게 해주는
관계를 맺는 게 가능할까? 예지가 똘레랑스에서 노마디즘으로 탈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지금 머리와 가슴 어디쯤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 더불어숲 회원 김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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