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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501번째 편지] 공부란 ‘두 발 걸음’을 얻으려는 노력 -노병준 2026. 09. 11.2026-09-1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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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501번째 편지]

 

                                공부란 ‘두 발 걸음’을 얻으려는 노력

 

오늘 함께 읽은 「한 발걸음」은 변화와 자기 개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목발을 배우면서 이루어진 변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글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단 감옥처럼 실천이 배제된 경우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근본에 있어서 한 발걸음이라는 자각을

갖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한 발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골목 자체가 특수한 골목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특수한 개인이기도 합니다.

결국 한 발걸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발로 걸어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공부란 ‘두 발 걸음’을 얻으려는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 <담론> 중에서

 

 

올해 초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있었던 강태운 선생의 미술 강의에서 여러 배움이 있었지만,

그 중 실밥이 터지듯 풀려가는 깨달음을 준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예술의 본령은 사람의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이라는

선생의 말씀은 비단 예술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특수한 자신의 조건 속에서

한 발걸음을 무심하게 내디디며 하루하루 나아가던 저에게 그 가르침은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우이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공부란 갇혀있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란 말씀처럼 한 발걸음은 우리를

무심하게 만드는, 당연하고, 익숙하고, 의심하지 않은, 완고한 틀입니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와 같은

문예사조의 변화도 결국 생각의 틀의 변화였고 금이 가고 깨진 틈으로 보였던 수많은 진실을 작가들이 포착하고

표현한 것이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비로소 낯설고 난해하고 불편하기까지 했던 시나 미술 작품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완고했던 생각의 틀을 깬다 해도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 틀을 깨는 수많은 각성과 노력의 반복이 바로

공부이고 창조이고 삶입니다. 우리의 삶은 곧 예술이며, 그러한 삶은 우이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신 ‘1회 완료적인

변화란 없다’라는 부단한 노력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발걸음이나 1회 완료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폄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 또한 변화의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이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숲 회원 노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