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500번째 편지]
인문 교양을 위한 공부
공부는 한자로 '工夫'라고 씁니다.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는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뜻입니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갑골문에서는 농기구를 가진 성인 남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人文學의 文은 汶과 같은 뜻입니다.
자연이란 질료質料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人)이 한다는 뜻입니다.
농기구로 땅을 파헤쳐 농사를 짓는 일이 공부입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 『담론』 18쪽 -
우리는 지금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AI라는 거대한 기술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과 사회 전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들의 사고·일·교육·문화·의사결정 방식까지 변화시키고
있으니, 이제는 ‘AI시대’라고 말합니다.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AI시대’일수록 ‘인문 교양’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문 교양’을 영어로는 ‘Liberal Arts’라고 합니다. ‘리버럴 아츠’는 “나 자신을 좀 더 면밀히 알고 싶고,
더 깊이 사고하고 싶은 욕구를 통해 충실하게 배우고, 다시 그 배움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 기계적이고 노예적인 노동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합니다. ‘나는 무엇에 쏠리어
얽매여 있는가?’, ‘무엇에 포박되어 있는지’, ‘어떤 사회구조 아래 붙들려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내 몸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는 더 그렇습니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내 몸을 다스려주는 서양의학을
사람들은 더욱 신뢰합니다. 누구나 알듯이 서양의학은 분分과학이 대단히 발달했습니다. 가령 눈이 아프면
안과, 이가 아프면 치과, 내과 중에서도 소화기·순환기·감염 내과 등으로 세분화되어 치료를 합니다.
기술과 장비의 고도화로 급성질환이나 외상에는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기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으로 인한 부작용, 나무는 보지만 숲을 놓치거나, 검사상 수치나
영상으로 미병未病 상태인데 아픔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뚜렷한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런 기관들 하나하나가 모여 내 몸이라는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관계 속의 내 몸인 것입니다. 동양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에 “불치이병不治已病
치미병治未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미 병든 몸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병들지 않은 몸을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몸이 있어야 마음이 있고, 그런 마음은 내 몸을 가꾸어 나갑니다.
내 몸이 자유로워야 마음도 자유롭습니다. 양생養生의 의의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고로 다친 경우가 아닌
대부분의 병은 잘못된 식생활 습관에서 온다고 합니다. 내 몸을 미병未病의 상태로 유지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양생하는 삶, 곧 자연의 이치를 좇아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나무를 보면서도 숲을
관찰할 수 있는 전체론적(Holistic)인 관점으로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이 인문 교양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 더불어숲 영남작은숲지기 이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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