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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샘터찬물 483번재 편지] 한송이 팬지꽃 - 최 훈 2026. 05. 08.2026-05-0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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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찬물 483번재 편지]

 

                                                                  한송이 팬지꽃

 

바야흐로 5월입니다. 나무 가득 흰 밥풀을 붙이고 있는 이팝나무가 달밤 아래 하얗게 빛납니다.

포슬눈으로 시작하다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내리는 겨울의 하얀 풍경은 동화 속의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역시 사람들은 추운 겨울보다는 따뜻한 봄을 더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2월의 흰 눈 속에 벌써 노란 얼굴을 내미는 복수초를 시작으로 봄까치와 노루귀가 수줍게 피어나면 새봄이 왔다는 반가움에 마음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이어 자연이 마련해 둔 꽃차례대로 매화에 살구꽃 복사꽃 피고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가 연이어 피어나면 봄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우리들의 마음은 싱숭생숭 바깥을 향하게 됩니다. 마침내 흐드러진 벚꽃이 허파에 한껏 바람을 불어넣는 4월이 오면 명자꽃, 황매화에 수선화, 라일락까지 꽃향기에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어려워집니다. 다행히 작고 하얀 여러 종류의 조팝나무꽃들이 마음을 가라앉혀주어 이제 곧 여름이 오리라는 걸 눈치채게 해 줍니다. 그렇게 5월이 우리 앞에 왔습니다.

5월에는 내가 좋아하는 쪽동백꽃도 오롱조롱 피어날 것이고, 아카시꽃과 찔레꽃 인동초꽃 등 향기가 더 진한 꽃들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누구나 만나고 싶은 꽃을 때맞춰 기다리기만 하면 언제나 만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어딘가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신영복 선생님도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감옥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제한되어 있지만 자연의 동식물을 접하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는 자연의 풍경을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내가 땅 위를 밟고 서 있다는 사실과 대지와 맺고 있는 유대감과 안정감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감옥은 실천이 배제된 외발걸음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자연과의 연결성마저 최소한으로 억제된 공간인 것입니다.

감옥 생활 10년이 지나서야 선생님은 조금씩 자연의 일부분과 조우하게 됩니다. 1978년 선생님은 개미 한 마리가 물어다 주었을지도 모르는 작은 풀씨 한 알이 옥창 좁은 곳에서 한 뼘도 넘게 자랐음을 발견합니다. 그 이듬해에는 어디선가 날아든 민들레씨 하나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80년 5월의 엽서에서는 작은 비닐화분에 담아 온 팬지꽃이 여남은 개의 꽃을 피워낸 것을 보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한 줌도 채 못 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세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로서 우리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하곤 합니다. 땅과 물과 햇빛과 공기입니다. 한 송이 팬지꽃이 몸담은 작은 비닐화분 안의 얼마 되지 않는 흙 속입니다. 꽃이 피기 위한 조건인 수화풍도 지(地)가 있은 연후의 일이고 보면, 우리가 늘상 밟고 다니는 땅과 흙이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이 절대 상징적인 비유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웬만한 절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地藏菩薩)도 바로 이 대지에 감사하고 든든하게 생명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발현된 것일 겁니다. 흙을 들여다보던 선생님은 곧바로 나는 과연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봅니다. 팬지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며 부끄러워하고 겸손해하시던 선생님은 우리가 알다시피 출소 후 많은 꽃송이를 피워 내십니다.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 서도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낮은 곳과 연대하면서..

감동적인 팬지꽃과의 만남 한 달 후, 이번에는 작업장에 메리골드 한 포기를 데려왔습니다. 물이 부족해 목을 걸치고 죽어 가던 꽃을 장송의 의례에 가까운 심정으로 흥건히 물을 뿌려 쓰레기통 옆에 치워 두었는데 얼마 후 놀랍게도 힘차게 팔을 뻗고 일어서 있는 꽃을 발견합니다. 선생님이 그 힘든 감옥생활을 이겨내는데 작은 풀씨 한 알과 팬지꽃과 메리골드와의 만남이 얼마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이 꽃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선생님의 핵심적인 사유라고 할 수 있는 ‘관계론'이 더 굳건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저의 과한 상상력일까요.

선생님은 이미 70년대 중반 서예에 매진하면서 ‘서도의 관계론'이라는 우이 서예의 기본 철학을 이미 정립하고 있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서도의 관계론’과 ‘사람의 관계론’을 넘어 ‘자연의 관계론’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데는 자연과의 만남에서 느낀 생명의 경이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후 선생님은 ‘잡초를 뽑으며(1984.9)’에서 잔디만 남기고 잔디 외의 풀은 사그리 뽑으며 육군사관학교 시절과 남아연방과 운디드니의 인디언에게까지 사고를 확장합니다. 단지 인간이 그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잡초로 규정한 풀을 뽑으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쇄도합니다. 이미 1968년에 잡초로 규정되어 뿌리까지 뽑힐 뻔했던 당신의 상황을 거시적으로, 역사적으로 되돌아보고, 날 때부터 이미 지니고 있었던 천부의 인권과 당당함으로 당신을 힘차게 세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 후에도 선생님은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임을 확인하시고(1984. 11), 출소 후 세계를 주유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히말라야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히말라야 사람들은 정상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사실과, 히말라야의 어둠과 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궁극적으로 자연이 허락하는 문명의 크기를 생각하기를 권유합니다. 또 아마존 지역을 방문하신 후에는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이제는 더 이상 칭찬이 못 되며 차라리 ‘자연적인 사람’이 칭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시게 됩니다(더불어숲, 1998). 선생님은 이미 ‘사람의 입장’을 넘어 ‘생명의 입장’에서 관계론을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일찍이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풍류도의 핵심 이념으로 ‘접화군생(接化群生)’을 말했듯이, 생명의 원리는 관계성과 순환성, 다양성에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물과 무생물을 막론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순환하고 변화하지 못하면 썩게 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획일화되면 굳어지고 진화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만 따르라고 겁박하는 것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변화를 거부하고 다양성을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생명이 자라날 공간은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약자에 더 관대해져야 하는 이유와 세상을 더 다양하고 평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드러납니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5월, 들판으로 나가 꽃들에 눈길을 주어 보세요. 들판의 꽃씨 하나에서 우주의 비밀을 발견해 내는 기쁨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우주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지상의 꽃 하나가 피어나면 밤하늘의 별 하나도 반짝이고, 그 별빛은 지구의 어느 곳에서건 우리의 머리 위에서 똑같이 빛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더불어숲 회원 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