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73번째 편지]
서도와 필재(筆才), 그리고 서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筆才)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巧)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만약 필재가 뛰어난 사람이 그 위에 혼신의 노력으로 꾸준히 쓴다면 이는 흡사 여의봉 휘두르는 손오공처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런 경우는 관념적으로나 상정될 수 있을 뿐, 필재가 있는 사람은 역시 오리새끼 물로 가듯이 손재주에 탐닉하게 마련이라 하겠습니다.
결국 서도는 그 성격상 토끼의 재능보다는 거북이의 끈기를 연마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글씨의 훌륭함이란 글자의 자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묵 속에 갈아넣은 정성의 양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서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는 그 사람의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은은히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더욱 높은 것임과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旣存)과 권부(權富)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82. 4. 13.) 중에서
선생님이 타계하신 지 10년이 지난 올해 2월 4일부터 6일간 ‘우이 신영복 10주기 합동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요즘의 서예 전시회가 자신의 서예 실력을 뽐내거나 상품가치로 평가되는 세태에서, 선생님의 글은 붓글씨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붓글씨는 손끝의 교(巧)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우직한 끈기와 정성으로 쓰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매년 전시회를 할 때마다 죽비가 되어 우리들의 손끝을 내려칩니다.
아울러 자획의 모양보다 자구의 뜻이 중요하고,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도 붓글씨를 연마하는 과정 내내 우리들의 나침반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더불어숲 서여회는 다른 글씨 모임과는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신입회원을 뽑을 때 붓글씨 실력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붓글씨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을 우선합니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 중에 무엇이 기억나는지를 물어봅니다. 동료들을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 가려는 품성을 더 높이 삽니다.
글씨를 연마하는 과정에서도 첩경을 찾기보다는 늦게 가더라도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도록 합니다.
서예를 위해 신영복체를 배우기보다는 선생님의 뜻을 배우기 위해 붓글씨를 쓰게 합니다.
글씨의 모양보다 그 글씨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후 쓰인 것인지에 더 관심을 표합니다.
그리고 그 글씨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것을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정성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서여회원들 중에도 그런 끈기와 정성이 드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씨는 어수룩한데 그 속에 담긴 정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붓글씨의 테크닉이 무딘 사람이었는데도 시간이 갈수록 단련의 미가 날로 더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를 앞세우기보다 동료를 위해 먼저 나서는 사람의 작품 앞에서는 그의 노력을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서여회는 필재는 없어도 거북이의 끈기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아름다움이 은은히 배어나는 그런 글씨들을 쓸 것입니다.
우리 더불어숲 회원들이 옆에서 지켜봐 주신다면 그 길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더불어숲 서여회 두메 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