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64번째 편지]
한 발걸음
「한 발걸음」은 변화와 자기 개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목발을 배우면서 이루어진 변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글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단 감옥처럼 실천이 배제된 경우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근본에 있어서 한 발걸음이라는 자각을 갖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한 발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골목 자체가 특수한 골목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특수한 개인이기도 합니다. 결국 한 발걸음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두 발로 걸어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공부란 '두 발걸음'을 얻으려는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두 발 걸음의 완성이 아니라 한 발걸음이라는 자각과 자기비판,
그리고 꾸준한 노력입니다. 완성은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1회 완료적인 변화란 없습니다.
개인의 변화든 사회의 변화는 1회 완료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설령 일정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계속 물 주고 키워 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관계라면 더구나 그렇습니다. 제도가 아니고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고 결정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 『담론』 243쪽에서 -
대학에 들어가 첫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제주도를 찾았다. 처음 들른 곳이 함덕 해변이었다.
고운 백사장과 얕은 바다 밑 패사층이 만들어 내는 푸른빛은 차원이 달랐다.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여행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제주를 찾았다.
제주를 떠올리면 푸른 잉크 빛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4·3 사건을 주제로 제주를 떠올리기 시작한 건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이후부터다.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한국 작가의 최신작을 읽자는
취지에서 선택한 책이었지만, 그 책은 나를 전혀 다른 제주로 데려갔다. 주인공 경하의 발걸음을 빌려
그동안 가보지 못한 제주 중산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폭설과 강풍을 뚫고 닿은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민간인 학살과 살아남은 가족들이 당한 수난과 싸움의 기록이었다.
이후 제주 4·3 화가로 불리는 강요배의 『풍경의 깊이』를 찾아 읽었다. 그의 그림 <젖먹이> 앞에서 나는 숨이 멎었다.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를 그린 <젖먹이>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그 현장, 무장대와 내통한 사람을 찾는다는 빌미로 공권력이 자행한 학살의 장소-북촌 마을을 지도에서 찾으며
나는 제주를 다시 배웠다. 북촌은 함덕 해변 바로 옆, 같은 조천읍에 있었다.
그 아름답던 해변의 그림자 속에 북촌의 비극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제주를 두 발이 아닌 한 발로 걸었던 셈이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시가 후원하는 <제주 4·3 평화기행>에 참여했다. 제주 4·3의 역사적 현장을 둘러보며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을 생각하는 여정이었다. 제주 4·3의 아픔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
국가 폭력이 어떻게 일상을 파괴하는가를 묻는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현재의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제주 4·3을 기억한다. 제주를 두 발로 온전히 걷는 일이다.
- 더불어숲 회원 강태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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