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62번째 편지]
한 발걸음
「한 발걸음」을 함께 읽기로 하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입니다.
'한발'이란 실천이 없는 독서를 비유한 표현입니다. 감옥에서는 책 읽고 나면 그만입니다.
무릎 위에 달랑 책 한 권 올려놓고 하는 독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시루에 물 빠져나가도 콩나물은 자란다고 하지만,
사오십 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이미 읽은 책이란 걸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책 제목마저 기억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독서가 독서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실생활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독서이기 때문입니다. 화분 속의 꽃나무나 다름없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실천'이 제거된 구조입니다.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한 발 보행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담론』 226쪽 -
실천-세상을 제대로 본 자가 사는 삶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라고 설파하셨던 선생님은 공감이 먼저고
다음이 애정이라면 최종적으로는 실천이라고 하셨다.
그럴 때 자유의 경지를 누릴 수 있다고 본 것이리라.
몸에 익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울 때는 무의식 속에서도 행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이나 젓가락질을 내가 이렇게 해야지’하고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익숙해지다 보니까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실천도 이와 같다. 생각하기에 앞서 내 손이 내 발이 내 몸이 먼저 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과 공간의 힘이 더해져야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푸른 하늘을」에서)라면서, 노고지리가 하늘을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는 것은 그냥저냥 이뤄지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바람에 기대어 공기의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날갯짓으로 이뤄낸 시간과 공간의 보상이다.
이른바 자기 고독과의 지난(至難)한 싸움으로 일군 결과물로, 이런 충분한 자기희생으로 얻어낸 것이 마침내 자유이며 혁명이라고 말한다.
북해의 물고기 곤이(鯤鮞)가 한번 날갯짓을 하면 구만리나 날아갈 수 있는 대붕(大鵬)으로 변했다는 ‘화이위조(化而爲鳥)’,
지금 당장 보이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먼 훗날을 기약하며 온갖 고행을 무릅쓴 이후 자유로운 비상을 한
‘조나단(Jonathan)’, 이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을 짓누르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마침내 이뤄낸 일들을 상징한다.
여기서 ‘새의 날갯짓’은 변화와 발전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으며 발로 뛰어가면서 차곡차곡 실천한 과정의 비유이리라.
우리는 오늘도 얼마나 많은 ‘날갯짓’을 하고 있는가를 성찰해 볼 일이다.
-이도환(영남지역작은숲지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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