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굴우상 "동굴에서 사는 사람은 동굴의 아궁이를 동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처지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간추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관의 양을 조금이라고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가 발 디딜 수 있는 객관적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온당하게 키워 가기 위해서는 저마다 그 '곳'의 고유한 주관에 충실함으로써 오히려 객관의 지평을 열어가는 순서를 밟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로야말로 객관이 빠지기 쉬운 방관과 도피로부터 우리의 생각을 옳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문제는 각자가 발 딛고 있는 그'곳'의 위치와 성격입니다. 동굴의 우상을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동굴의
선택 문제이며 참여점(entry point)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인(仁)에 거(居)하는 것이 아름답다"(里仁爲美)고 한 까닭이 이와 같습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어쩔 수 없어 동굴을 바꾸지 못한 경우라면 자기가 거하는 동굴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도 동굴의 우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지...
무더운 여름 새로운 민주정부에게 그 동안 쌓였던 것들이 또는 과거 정부하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지켜보는 나의 입장이 '객관'의
입장에 자꾸만 서려하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래저래 많이 더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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