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과 이상의 영원한 갈등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나는 굴원의 이 시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오래된 주제에 대한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 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대중노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만난 노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는 의미는 ‘신목자필탄관(新沐者必彈冠) 신욕자필진의(新浴者必振衣)’처럼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경적이라는 의미는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오래된
과제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강의> 중에서 작금의 시국을 바라보는 키워드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굴원 이래 2000년을 넘은 숙제에 무엇이라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고 오늘을 생각할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