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504번째 편지]
양지바른 생각의 지붕에 널어
그동안 「새 시대」의 구호(口號)와 표어(標語)로 갈아붙이느라 몹시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다리를 올라가 높은 곳에서 일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글씨가 바른지 삐뚤어졌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코끼리 앞에 선 장님의 막연함 같은 것이 없지도 않았읍니다만 저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봄으로써 겨우 바른 글씨를 쓸 수 있었습니다.
“푸른 과실이 햇빛을 마시고 제 속의 쓰고 신물을 달고 향기로운 즙으로 만들 듯이”
저도 이 가을에는 하루하루의 아픈 경험들을 양지바른 생각의 지붕에 널어, 소중한 겨울의 양식(良識)으로
갈무리하려고 합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글씨 초안을 잡고 '염청서소(染靑書巢)' 한쪽 흰 벽에 걸어놓았습니다.
여유를 두고 뒤에서 조망(眺望)을 하다 보면 글씨 쓸 때는 안 보이던 허술함과 부조화(不調和)가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조망(鳥望)후 다시 쓰고 또 관찰(觀察)하고, 그렇게 한 달 정도 고치기를 반복해야 글씨가 겨우 조금 나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글씨를 걸어 놓고 무엇을 더 채우려 하기보다는 어떤 것을 화선지에서 빼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빼고 또 빼내야 그 속에 여백(餘白)의 기운이 생기고 한 글자 한 글자들이 서로 긴밀함을
유지해 팽팽한 긴장감(緊張感)을 형성합니다.
삶이든 글씨든 나무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숲을 헤아리는 조망(鳥望) 능력이 있어야 함을 살수록, 쓸수록
깨닫습니다. ‘진정한 완벽(完璧)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에 동감이 됩니다.
가을 추수를 끝마치고 과수원을 일의 경중과 시급에 따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이제는 제 마음을 좀 더 소박(素朴)하고 간결(簡潔)하게 추슬러 글씨 농사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처음 마음으로 나의 영혼(靈魂)을 단단히 결속해 묵묵히 걸어가려 합니다.
- 더불어숲 나무 서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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