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88번째 편지]
씨뿌리는 사람
그간 어머님, 아버님께서 강령하시오며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열여드레나 내리 비닐 창에 상화(霜花)가 만발하더니 어제,
오늘 얼음 한 점 없는 창밖으로 밝고 이른 새벽이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염려하시는 겨울 추위도 이제 큰 고비는 넘긴 듯합니다.
고중장구와족제 양춘부래답곤기
(庫中藏具臥足齊 陽春復來踏閫起)
창고 속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농기구들도 머지않아 봄이 오면
문 열고 일어서서 들판으로 나갈 것입니다. 자(字) 모둠 해본 절구 한 짝 적었습니다.
오늘이 우수, 경칩을 넘기고 나면 헛간에 누운 농구(農具)도 손질하고 봄볕에 겨울 옷가지를 널 때입니다.
그 흔한 엑스란 내의 한 벌 없이 밤중에 찬물 먹으며 겨울을 춥게 사는 사람들 틈새에서 해마다
어머님의 염려로 겨울 따뜻이 지내는 저는 늘 옆 사람에게 죄송합니다.
봄은 내의와 달라서 옆 사람도 따뜻이 품어줍니다. 저희들이 봄을 기다리는 까닭은
죄송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읽고 영치시킨 책이 상당하리라 짐작됩니다.
자동차로 접견 오시는 걸음이 있으시면 차하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농구(農具)들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삶의 간절함이자 희망입니다.
우리의 삶은 절망보다는 희망이 늘 많기에 살아갈 만한 것이고 또한 즐거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염청서소(染靑書巢)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씨뿌리는 사람(The Sower, 1888년) 실물 크기의 영인본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서실 창문을 열고 고흐의 그림을 보는 것은 하루를 더욱 희망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저만의 루틴입니다.
처음에는 그림의 계절이 이른 봄의 아침인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배경에 밀이 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초여름을 뜻했습니다.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니 고흐가 이 씨뿌리는 사람을 저녁나절에 그렸다고 합니다.
결국 이 그림은 밀이 익어가는 초여름 저녁나절 찬란하게 지는 태양 빛을 등지고 농부가
대지에 씨를 뿌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고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넘어,
생명의 순환(죽음과 탄생)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강렬한 색채와
그 두께감(임파스토 Impasto)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역경과 희망, 빈센트 반 고흐의 절망과 희망을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희망과 절망은 마치 꽃과 그 꽃받침이 함께 존재해 씨앗을 영글게 하듯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본적인 음양(陰陽)적 요소라 생각했습니다. 주역(周易)의 이치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더불어숲 나무 서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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