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02. 02. 샘터찬물 편지 - 14 |
2017. 02. 02. 샘터찬물 편지 - 14 청년시절 "한 사람의 일생에서 청년시절이 없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아무리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꿈과 이상을 불태웠던 청년시절이 없다면 그 삶은 실패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는 청년시절이 없습니다. 가슴에 담을 푸른 하늘이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IMF와 금융위기 때 실직하였고, 수험 준비와 스펙 쌓기 알바와 비정규직이라는 혹독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진리와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부정한 정치권력과 천박한 상업문화를 배워야 하고, 우정과 사랑을 키우기보다는 친구를 괴롭히거나 친구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며 좌절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뿌리가 사람이고, 사람의 뿌리가 청년시절에 자라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의 비극입니다. 그 사회가 아무리 높은 빌딩을 세우더라도 꿈과 이상이 좌절되고 청년들이 아픈 사회는 실패입니다." - 《처음처럼》278면. 엊그제 설날 아침에는 처갓집에 오랜만에 자식 6남매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그러나 처형네 대학 3학년인 큰딸 혜원이는 지난 추석때와 마찬가지로 올 설에도 외갓집에 오지 못했습니다. 국립대 세무학과에 다니는 혜원이는 오는 4월에 있는 세무사 자격시험에 기필코 합격하기 위해 설 연휴도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다는 처형의 설명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여행도, 연애도, 그 뜨거웠던 촛불집회도 모른 채 책상에서 공부만 하고 있는 조카인데 명절에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다는 아내의 볼멘소리가 들려옵니다. 혜원이는 세무사시험을 끝내더라도 다시 취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청년시절을 더 바쳐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청년시절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되는 조금 씁씁한 설날 아침입니다. |
| 2017. 01. 26. 샘터찬물 편지 - 13 |

2017. 1. 26. 샘터찬물 편지 - 13 세상의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새봄의 가장 확실한 증거를 잡초에서 확인합니다. 잡초는 물론 이름 없는 풀입니다. 이름은 사람들이 붙이는 것이고,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의 이름 없는 풀은 자신의 논리, 자신의 존재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승리 그 자체입니다. 정치란 사람을 자라게 하고 사람을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만들어 내는 일의 기쁨을 서로 신뢰하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그 가슴으로 만나게 하고 사회를 그 뼈대에서 지탱하고 있는 이러한 역량들을 일으켜 세우고 사회화 하는 일이 정치의 본연입니다. 그러한 판을 열고 그러한 틀을 짜는 일입니다. 잘못된 판, 잘못된 틀을 새롭게 바꾸는 일입니다. 세상의 봄도 산천의 봄과 다를 리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박힌 경멸과 불신이 사라질 때 옵니다. 집단과 집단, 지역과 지역 사이에 갇혀 있는 역량들의 해방과 함께 세상의 봄은 옵니다. 산천의 봄과 마찬가지로 무성한 들풀의 아우성 속에서 옵니다. 모든 것을 넉넉히 포용하면서 기어코 옵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중에서 새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아직 한파 속 거리에서 밤을 지키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충무공 이순신은 그 무거운 구리 갑옷을 입고 큰 칼 짚고 서서 경복궁과 청와대를 지키는 일을 이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들꽃들과 함께 하며, 먼 들녘의 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법이 도덕성을 신뢰받지 못할 때 그것은 다만 억압의 도구로 간주될 뿐이다. 이른바 ‘불법적’인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아무리 호소하더라도 합법적인 절차 그 자체마저 억압의 한 방법이라고 여길 뿐이다.” 하셨습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사법정의가 바로 세워질 영장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판을 짜는 시작에 불과하며, 이 일은 새 판에 좋은 질료로 보태어질 것입니다. 고향은 점점 소멸되어가는데 명절은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언땅이 녹아 출수할 때 씨앗을 품은 땅을 꼭꼭 다져주듯 곳곳에서 작은 만남으로 도심 속, 고향 같은 숲을 일궈가야겠습니다. 봄은 기어코 온다는 말씀을 되새기는 벗들이 추운 들길도 의연히 걸어갑니다. |
| 2017. 01. 19. 샘터찬물 편지 - 12 |

2017. 01. 19. 샘터찬물 편지 - 12 열두 번째 편지 - 큰 슬픔 작은 기쁨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처럼》중에서 선생님의 1주기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다녀온 뒤로 또 다시 먹먹해지기만 하는 가슴 며칠을 더 시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대적 과제와, 고통받는 수많은 이웃들의 모습을 모르진 않지만 스승의 부재를 새삼 확인하며 느끼는 이 슬픔에 침잠하고 싶습니다. 서화 전시회, 여러 모임들 그리고 촛불 광장에서 낯익은 얼굴들과 만나는 것이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서로 손잡고 주고 받았던 따뜻한 마음에서 선생님이 남겨주신 모습을 보는 것이 작은 기쁨이었습니다. 이 기쁨들이 모여 우리를 다시 깨우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서로 가슴으로 만나 선생님 말씀을 새기며 함께 걸어가는 '아름다운 동행'- '더불어 숲'을 이루어 서로 기대고, 그 숲 언저리 넓히도록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
| 2017. 01. 12. 샘터찬물 편지 - 11 |

2017. 01. 12. 샘터찬물 편지 - 11 예술과 소통
“저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 하기에 앞서, 붓을 잡는 자세를 성실히 함으로써 먼저 뜻과 품성을 닦는, 오히려 ‘먼 길’을 걸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뜻과 품성이 비로소 훌륭한 글씨와 그림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도(人道)는 예도(藝道)의 장엽(長葉)을 뻗는 심근(深根)인 것을, 예도는 인도의 대하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그리하여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오늘은 신영복 선생님의 1주기 추모전에 다녀왔습니다. 어느덧 1년 선생님 떠나시던 날 하늘 가득한 눈송이도 날개를 접어 길을 내어드렸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선 그 눈꽃 그 바람 어느 곳에서 고요히 고요히 다시 길을 내어 우리들에게 만남을 선물해주고 계십니다.
“진정한 예술은 인간과 세계 사이의 깊이 있는 관련을 추구하는 것이며, 어떠한 미래와도 연결될 수 있는 ‘소통 방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 《더불어숲》 중에서
바람결을 따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실 선생님 남겨주신 예술 작품도 함께 간직하며 미래를 향해 계승하겠습니다. |
| 2017. 01. 05. 샘터찬물 편지 - 10 |

2017. 01. 05. 샘터찬물 편지 - 10 지혜와 용기 "새해가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겨울의 한 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해가 바뀌어 달력을 바꾸었습니다. 섣달 그믐날 덮고 잔 이불 속에서 다음날 새로운 심기로 일어서지 않으면 달력을 새것으로 바꾼다고 시간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새로움이란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에서 비롯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새로울 ‘新’은 서있는(立) 나무(木) 옆에 도끼(斤)가 놓여있는가 봅니다. 무성한 헛가지와 불량지를 솎아내면 밑동은 튼튼해지고 실해져 언제든 새순이 돋기 마련이지요. 찍어내어 결별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며 아직도 저는 정유년의 아침해를 새롭게 띄워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만남을 쌓아가고 성찰의 열매를 삶으로 살아낼 때 그때가 언제이든 바로 새해, 새날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시작으로 정유년 해오름달을 맞이합니다. 매일매일 띄워 올리는 새로운 아침해가 찬란하게 빛나길 바랍니다. |
| 2016. 12. 29. 샘터찬물 편지 - 9 |

2016. 12. 29. 샘터찬물 편지 - 9 "겨울은 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삭풍 속에 서 있는 나목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는 계절입니다. 겨울밤 나목 밑에 서서 나목의 가지 끝에 잎 대신 별을 달아봅니다." - 《처음처럼》중에서 - 일 주일 만에 텃밭에 나왔습니다. 동지(冬至) 지나 찾은 텃밭에 겨울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동안 텃밭 주인의 게으름을 밭가에 쌓여 있는 마른풀더미가 증명해 줍니다. 솥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잡초를 불쏘시개 삼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봅니다. 아궁이가 금새 토해 내는 하얀 연기에 올 한 해의 생각들을 실어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새봄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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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2. 22. 샘터찬물 편지 - 8 |

2016. 12. 22. 샘터찬물 편지 – 8 개혁 주체의 물적 토대 "16세기 초에 일어났던 개혁 방식의 전환에서도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사상의 미성숙을 반성하고 새로운 진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사상 투쟁은 모든 개혁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천적으로 담보해 낼 수 있는 주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조선조 건국 때도 그랬고, 개혁 사림이 복귀할 때도 그랬습니다. 개혁 주체의 물적 토대가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그나마 선비 정신이라는 지식인의 전통이 견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중소 지주이긴 하지만 지주라는 물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다름이 없습니다. 독립된 개혁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당면 과제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공자입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라는 자로의 질문에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라는 공자의 답변입니다. 궁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입니다. 독립된 공간과 집단적 지성 그리고 그러한 소통 구조를 사회화하는 일이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담론》중에서 - 얼마 전 제가 사는 동네 어귀에도 오래된 슈퍼 '빙그레 공판장' 자리에 대기업 편의점 간판이 환하게 조명을 밝혔습니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더욱 공고히 된 정경유착의 반어적 광고에 불과함을 목도합니다. 개혁 주체들의 절박한 현실이 찬 겨울바람에도 더욱더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들게 합니다. 가난해도 의로운 자부심의 독립된 개인들이, 건강한 연대로 깨어있는 양심을 모아 집단지성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선 묵자의 곡돌사신(曲堗徙薪)- 굴뚝을 돌려놓고 장작을 옮겨 놓아 불이 나지 않도록 예비하고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미리 단속하는 사람, 그들을 몰라보는 세태를 아쉬워하셨습니다. 전쟁으로 공을 세운 사람은 알아주지만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민의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보다 나은 공동체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계심을 기억하겠습니다. |
| 2016. 12. 15. 샘터찬물 편지 - 7 |
2016. 12. 15. 샘터찬물 편지 - 7
미완의 시절
"대학에 들어간 지 꼭 1년 만에 4.19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감동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선거 다시 해라' '자유당 정권 물러가라' 정도에 약간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가미된 정도였지만, 세상이 바뀐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4.19에서 5.16까지 비록 1년여의 짦은 기간이었지만 푸른 하늘을 보았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은 지금까지 그를 지탱시켜 준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4.19는 그야말로 '총탄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이었습니다. (중략) ... 4.19의 감동 속에 총알은 우리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고 진보적 청년들은 생각했지만 5.16의 현실 속에서 그들은 다시 깨달았습니다. 총알은 모자만 뚫고 지나갔다고!" - ≪처음처럼≫ 중에서 -
칠백만 촛불의 힘이 가져다준 감격적인 상황이 가슴에 가득한 때입니다. 그러나 마냥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은 지나온 현대사의 질곡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산의 토끼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자기가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크다는 착각을 안하는 것이다.'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하는 주말에 엄동설한 밤 기운 무서운 거리를 매번 나서는 것은 분명 불편하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 생각하며 두 눈 부릅뜨고 광장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
| 2016. 12. 08. 샘터찬물 편지 - 6 |
2016. 12. 08. 샘터찬물 편지 - 6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납니다. 이것은 밤하늘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입니다.” - ≪처음처럼≫ 중에서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수천수만이 아니라 수백만 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설마 하던 이야기들이 사실이 되어 망치처럼 우리를 때리고 있습니다. 작은 아픔에 함몰되어 있던 어제의 문맥을 깨뜨리고 나와서 이 불행한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부끄러워하자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부끄러움, 평소에는 마음에만 담아두던 감정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촛불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성찰하고 있습니다. 무왕불복無往不復, 가기만하고 돌아오지 않는 역사는 없다고 하지요. 나의 삶이 과연 이 시대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장서서 곧게 걸어가신 분들이 있어서 지금 이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로만 인사하며 살았습니다. 현실을 바꾸어가는 것이 역사의 근본이라는 것을 함께 촛불을 들고 나아가며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젊은이가 맑은 목소리로 크게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가 바꾸겠습니다.' '민주주의 우리가 지켜내겠습니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밤'이 있습니다.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밤의 한복판에 서있는 당신은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을 위하여 꼿꼿이 서서 밤을 이겨야 합니다." - ≪처음처럼≫ 중에서 함께 촛불을 밝혀주어서 고맙습니다. |
| 2016. 12. 01. 샘터찬물 편지 - 5 |
2016. 12. 1. 샘터찬물 편지 - 5 다섯번째 편지 "불꽃"을 띄웁니다.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한겨울의 연탄불은, 추위에 곧은 손을 불러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합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 살얼음 언다는 소설(小雪) 지나고, 큰 눈 내려 일손 놓는다는 대설(大雪)이 머지않습니다. 깊어가는 겨울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춥고 시린 삶이 눈물겹습니다. 이들에겐 겨울의 한복판에서 타오르는 연탄 불빛이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느껴질 겁니다.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불꽃으로 뜨겁게 타올라 언 몸과 언 마음의 이웃들에게 온기를 불어 넣는 연탄불 같은 사람이 진정 우리 시대의 길이고 힘이 아닐는지요. 이들이야말로 동토(凍土)에서도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언 땅속에 꽃씨를 심고 희망을 추수하는 사람들이지요. 인간의 따스한 가슴과 실천이 배제된 진리 공부는 공염불임을 생각하며 이 겨울 한 장의 연탄불로 활활 타오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따스운 밥을 짓고, 시린 손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음으로써 끼니진지가 진지(眞智)가 되는 훈훈한 세상을 꿈꾸며 선생님 글을 읽습니다. |
| 2016. 11. 24. 샘터찬물 편지 - 4 |

2016. 11. 24. 샘터찬물 편지 - 4 네 번째 편지 "사람의 아름다움" 띄웁니다. "야생초 찾아다니는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꽃 한 송이의 신비가 그렇거든 사람의 경우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누구나 꽃'입니다. 그 속에 시대가 있고 사회가 있고 기쁨과 아픔이 있습니다." - 《담론》 중에서 - 아침 일찍 트럭을 타고 돼지감자를 수확하러 텃밭에 나왔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에, 밀양 다원마을에 사는 재만이 아저씨는 한창 경운기에 거름을 실으며 겨울채비에 바쁘기만 합니다. 나이 60을 바라보는 재만이 아저씨는 평생 학교를 다녀 본 적도, 결혼 한 적도 없이, 지금까지 이 동네 어느 집 머슴살이를 하는 노총각입니다. 이 텃밭에 나온 지 8년 동안 나는 재만이 형님이라 불러왔는데 밭일에 대해 물으면 무엇이든 척척 답해 주시고, 결코 화 내는 모습을 본 적 없습니다. 그는 항상 너털웃음 지으며 우직하게 소처럼 주인집 농사일만 하며 살아가는 농부이고, 밭일하다가 커피 한 잔 나누며 말동무하는 벗입니다. 그의 가슴 속 깊은 아픔을 감히 내가 가늠할 길 없지만 얼굴만은 언제나 봄날 들녁에 핀 작은 풀꽃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입니다. |
| 2016. 11. 17. 샘터찬물 편지 - 3 |
2016. 11. 17. 샘터찬물 편지 - 3
세 번째 편지 "잎새보다 가지를" 띄웁니다.
"낙엽을 쓸면 흔히 그 조락(凋落)의 애상에 젖는다고 합니다만, 저는 낙엽이 지고 난 가지마다에 드높은 가지들이 뻗었음을 잊지 않습니다. 아우성처럼 뻗어나간 그 수많은 가지들의 합창 속에서
저는 낙엽이 결코 애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겠습니다. 잎새보다는 가지를, 조락보다는 성장을 보는 눈, 그러한 눈의 명징(明澄)이 귀한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 잠시 멈추고 창밖을 봅니다. 나무의 가지들이 들판이나 숲 속의 가지와는 다릅니다. 몸통 언저리까지 잘려나가 온통 V와 Y 모양입니다. 또한, 낙엽은 제 뿌리짬에 거름이 되지 못하고 자루에 눌려 어디론가 실려갑니다. 도심에 사는 나무의 생육을 위한 조치라 하기엔 뿌리내릴 땅의 너름이 군색하고, 보도블록 장벽은 견고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흐르는 시간일 것입니다. 시간은 역사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통한 역사의 생환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 개인화된 사람이 아니라 역사화되고 사회화된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역사가 재구성될 때 비로소 역사가 생환합니다." 하셨습니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의 계절에 역사를 추수하는 일은 깨어있는 시민의 소명일 것입니다.
찬 겨울은 맑은 정서로 저 뭉툭한 가지에도 움틀 자리를 준비하는 어기찬 다짐의 시간입니다. |
| 2016. 11. 10. 샘터찬물 편지 - 2 |

2016. 11. 10. 샘터찬물 편지 - 2 두 번째 편지를 띄우는 이 시간이 매우 무겁습니다.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 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70%의 자리'가 득위得位의 비결입니다." - 《강의》 중에서 - '득위得位'를 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좌절과 분노가 뒤엉킨 참담한 심경으로 지내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득위'를 하지 못한 것이 명백하고, 그래서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나는 불행한 상황입니다. 이 위기를 수습하겠다 나서는 사람들 또한 '득위'를 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사색의 계절이 주는 여유로움을 빼앗긴 채 연일 나오는 기막힌 소식에 정치적 법률적 분석에 더하여 심리 분석까지 해야 하는 피곤한 시절이지만, '개인의 팔자가 민족의 팔자에 종속된다'는 엄중한 진리를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
| 2016. 11. 03. 샘터찬물 편지 - 1 |

2016. 11. 03. 샘터찬물 편지 - 1
샘터찬물 첫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미술시간에 어머니 얼굴을 그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간이역의 그리움은 밤 열차 소리와 함께 힘겨운 삶을 견디게 하는 추억의 등불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 뿐입니다." 햇빛 쨍쨍하던 여름날이 다가고 어느새 찬바람 쌩쌩부는 늦가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올해 초 신영복 선생님을 떠나 보내고 남겨주신 언약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지냈습니다. 이제 매주 목요일 우리의 그리움을 담아 샘터찬물 편지를 여러분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5명이 돌아가며 쓰기로 했습니다.. 우선 선생님 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납니다. 기다림은 더 먼 곳을 바라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우리의 편지가 강물을 따라 흘러가며 새로운 만남을 꽃피우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