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터찬물 51번째 편지(2017.10.27)/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 |

오늘 햇볕과 평화의 땅에서 추모비를 마주하는 마음이 당혹스럽다. 더구나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는 거기 새겨진 비문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김성숙 선생은 학우였던 이세종의 마음이 되어 이 비문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이세종 열사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너무나 푸른 가을 하늘이 차라리 슬픔이었다. 오늘 추모비 앞에 모인 당시의 학우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30년이 지난 아픔이 한결 가셨을 법도 하건만, 반가운 인사마저 서로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면할 수 없었던 세월이었다. 국회의원, 시의원에서부터 교사와 일용직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걸어온 길이 한결같지 않지만, 학창 시설의 우정과 이상이 어떻게 굴절되고 부침하였는지 돌이켜보면 30년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든다. _<변방을 찾아서>중에서 아픈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망각과 치유를 하기 마련이지만, 1980.5.18. 광주는 가슴 깊은 곳 아물지 않는 상처입니다. 무고한 시민을 향해 헬기와 탱크를 동원해서 무차별 발포하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조직적으로 진실을 은폐했던 지난 과거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실은 감출 수 없는 생명입니다. 군화 발에 짓밟히고 왜곡되고 날조되었던 그날의 진실이 바로 잡히길 기대합니다.
억울하게 스러져갔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 맑은 하늘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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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0번째 편지(2017.10.20)/ 추억이란 |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연을 계기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거듭할수록 우연이 인연으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리라.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도 우연한 조우가 아니라 인연의 끈을 따라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필연임을 깨닫는다"
_<변방을 찾아서> p.17 길을 걷다가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등을 만나듯이 나는 1주일에도 몇 번씩 밥 먹고 양치질을 하다가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는 누군가를 추억으로 만납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저에게 이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인석씨, 밥을 먹고 난 뒤 양치질을 너무 일찍 하게 되면 입 안에서 생기는 음식물 소화액이 줄어들어 좋지 않아" 라고 말입니다.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양치질을 할 때마다 문득문득 그를 만납니다. 가을이 되면 그가 그립습니다. 참 그립습니다... |
| 샘터찬물 49번째 편지(2017.10.13)/ 화이부동(和而不同) |

화이부동(和而不同) "나는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평화정착, 교류 협력만 확실하게 다져 나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화정착, 교류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입니다. 통일通一이 일단 이루어지면 그것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통일統一로 가는 길은 결코 험난하지 않습니다.“ _<담론> 중에서 읽어볼수록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지난 10년여간의 불통이 오늘의 이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어 민족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이 격언이 이 땅 모든 이의 가슴에 굳건히 자리하길 빌고 또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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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29. 샘터찬물 편지 - 48 |

한솥밥 (A big table in the yard)
대문을 열어놓고 두레상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나누는 정경은 지금은 사라진 옛그림입니다.
솥도 없고 아궁이도 없습니다. 더구나 두레상이 없습니다. '한솥밥'은 되찾아야 할 삶의 근본입니다. 평화는 밥을 고르게 나누어 먹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쌀(禾)을 고루나누어(平) 먹는 (口)것이 '평화(平和)'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With the gate wide open, seated around a big table in the yard, eating together from a huge iron cauldron... " A scene that can be seen no more. No more huge cauldrons. No more furnaces to hold the cauldrons. And sorriest of all, no more big tables in the yard. The rice cauldron is the basis of life to be restored.
Peace begins at eating together. The meaning of peace lies in sharing the rice fairly.
_<신영복의 언약> 28화 / 번역- 역사학자 김기협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징검다리를 이은 긴 휴가에도 날은 덥고 평화는 없습니다 올해는 '한솥밥'을 되찾고 싶습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모두 평화가 깃든 한가위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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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23. 샘터찬물 편지 - 47 |

환절기에 찾아오는 감기
환절기에는 거의 빠짐없이 감기 한 차례씩 겪습니다. 감기는 물론 걸리지 않는 편이 좋지만 걸리더라도 별 대수로울 것이 없습니다. 빤히 아는 상대를 만난 듯 며칠짜리의 어떤 증세를 가진 것인지 대강 짐작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때뿐이고 속만 긁는 감기약 먹는 법 없습니다. 신열과 몇 가지의 증세, 그리고 심한 피로감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잔 먹은 주기(酒氣)를 느끼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감기가 허락하는 며칠간의 게으름만은 무척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배짱으로 책은 물론 자잘한 일상적 규칙이나 이목들도 몰라라 하고 편한 생각들로만 빈둥거리는 며칠간의 게으름은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닙니다. 징역살이에는 몸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감기 핑계로 누리는 게으름은 도리어 징역 속의 긴장감을 상당히 느꾸어줍니다. 특히 회복기의 얼마 동안은 몸 구석구석에 고였던 나른한 피로감 대신 생동하는 활력이 차오르면서 머리 속이 한없이 맑은 정신 상태가 됩니다. 이 명쾌한 정신 상태는 그동안의 방종을 갚고도 남을 사색과 통찰과 정돈을 가능케 해줍니다. 환절기의 감기는 편한 잠자리의 숙면처럼 그 자체가 깨끗한 휴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아침, 또 하나의 출발을 약속합니다.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감기로 며칠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플 겨를도 없이 바쁜 시간이건만 이내 몸이 견디지 못하고 그만 고장이 났습니다. 어쩌면 쉬어 가고 싶은 마음 한 자락 들켜 몸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이 지쳐 단풍들어간다는 가을 초입,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잠시 일상을 내려두고 쉬어 가시길 권합니다. 쉼으로 새로운 아침, 새 출발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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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15. 샘터찬물 편지 - 46 |

초상화 그리기 자유롭고 올바른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문맥을 벗어나야 합니다. 문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당대의 문맥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중세 천년동안 마녀 문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우리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탈문맥과 탈주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진리입니다. _네이버포스트 <신영복의
언약> 제22화 적폐를 청산하고자 함은 갇혀있는 우리시대의 문맥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 일이겠지요? 그러나 모두의 뜻을 모아 함께 달려보려는 꿈은 먼 훗날에나 이루어질 일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대단한 사람이 탈문맥과 탈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탈문맥과 탈주를 해내는 사람이 대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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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08. 샘터찬물 편지 - 45 |

평화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의
시)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주제입니다. 평화,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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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01. 샘터찬물 편지 - 44 |

니토 위에서 쓰는 글 다시 출발점에서 첫발을 딛고 일어선다. 시야에는 잎이 진 나목 위로 겨울 하늘이 차다. 머지않아 초설에 묻힐 낙엽이 흩어지고 있는 동토에, 나는 고달픈 그러나
새로운 또 하나의 나를 세운다. 진펄에 머리 박은 니어의 삶이라도 그것이 종장이 아닌 한 아직은 인동한매의
생리로 살아가야 할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걸어서 건너야 할 형극의 벌판 저쪽에는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등댓불처럼 명멸한다. 그렇다. 일어서서 걸어야 한다. 고달픈
다리를 끌고 석산빙하라도 건너서 "눈물겨운 재회"로
향하는 이 출발점에서 강한 첫발을 딛어야 한다.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1969년 11월 선생님께서
무기징역살이를 시작하면서 쓰신 글입니다. 이렇게 20년 20일을 살고 바깥으로 나오셨지요.
바깥. 새로운 만남, 모든
혁명이 시작되는 곳. 그곳에서 선생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나를 세워보고 싶습니다. |
| 2017. 08. 25. 샘터찬물 편지 - 43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저는 자본주의가 자기 증식을 하면서 국민경제 내부로는 독점으로
귀결되고,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일국 패권의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적 필연성을
늘 비판해 왔습니다. 제가 동양고전과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를 대비시키는 이유는 감옥에서 동양고전을 많이 읽기도 했지만, 이런 패권적이고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의 압도적 포섭에도 불구하고 소비나 소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양 고전에서 발견한 것은, 삶의 궁극적 가치는 ‘인성(人性)의 고양(高揚)’이란 점입니다.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적 성취가 더 높은 차원의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적 성취는 인간관계로 결실되는
것이지요. 훌륭한 사람, 훌륭한 사회, 그리고 훌륭한 역사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근대사회의 전개과정이 보여 온 존재론적 패러다임을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오늘의 문명사적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전을 읽는’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우겠다는 관점’이 고전의 기본 독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21세기로 전환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자각적인 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양의 오래된 관계론적인
사상을 통해서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패러다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지요."
_<손잡고더불어>중에서 청년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70세 노년은 삶을 부지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경쟁하며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당장은 먹고 살아야 하기에 현실의 덫을 벗어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만,
결국은 물질적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와 ‘너’가 아닌 ‘우리’로 나아가는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열쇠라고 믿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만 곧 가을이 다가옵니다. 올
가을에는 동양고전을 함께 읽으며, 현실의 덫을 깨트릴 커다란 망치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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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8. 17. 샘터찬물 편지 - 42 |

공감 공감, 매우 중요합니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것은 가슴 뭉클한 위로가 됩니다. 위로일 뿐만 아니라 격려가 되고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삶이란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_<담론> 중에서
나이가 자꾸 들어가면서 학창시절에 그렇게 친했던 친구와도 자꾸 만남의 횟수가 줄어 듭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와도 1년에 한두번 만나면 어색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서로 공감할 것이 자꾸 줄어 듭니다. 그 친구와 서로 같은 마음과 꿈을 가졌던 옛날이 자꾸 그립습니다. 옛날 우리가 가졌던 그 가슴 뭉클했던 위로와 공감을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찾을까요? 물질과 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어 늘 고민하고 삽니다. 공감이 그만 고민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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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8. 11. 샘터찬물 편지 - 41 |

빗속 우리는 무릎 칠 공감을 구하여 깊은 밤 살아있는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작은 아픔 한 조각을 공유하기 위하여 좁은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산(他山)의 돌 한 개라도 품속에 소중히 간직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심한 일상을 질타해 줄 한 줄기 소나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입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폭염이 계속되는 날들이라 시원한 빗줄기를 고대하며 하늘을 쳐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무심한 일상 속에서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무더운 여름날, 가족들과 벗들과 시원한 시간들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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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8. 03. 샘터찬물 편지 - 40 |

장마철의 개인 하루 지난 9일 하루는 서화반 일곱 명을 포함한 10여명이 사회 참관을 하고 왔습니다. 그날은 마침 장마철 속의 개인 날이어서 물먹은 성하의 활엽수와 청신한 공기는 우리가 탄 미니버스의 매연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들의 심호흡 속에다 생동하는 활기를 대어 주는 듯 하였습니다.우리는 먼저 금산의 칠백의총을 찾았습니다.오후에는 먼지가 일고 자갈이 튀는 신작로를 한참 달려서 신동엽의 금강 상류까지 나갔습니다.실로 오랜만에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저는 까칠한 차돌멩이로 발때를 밀어 송사리 새끼를 잔뜩 불러 모아 사귀다가, 저만치서 고무신짝에 송사리, 새우, 모래무치들을 담고 물가를 따라 이쪽으로 내려오는 새까만 시골 아이들-30여년전 남천강가의 저를 만났습니다. 저는 저의 전재산인 사탕 14알, 빵 1개, 껌1개를 털어놓았습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던 이오덕 선생의 아이들이기도 하였습니다.15척 벽돌담을 열고 오랜만에 잠깐 나와 보는 "참관"은 저로 하여금 평범하고 가까운 곳에서 인생을 느끼게 하는 "터득의 순간"되기도 합니다._<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장마도 이제 끝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습하고 덥습니다.태풍도 남쪽에서 휘몰려 오려고 합니다.2017년의 여름.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날, 1979년 선생님의 여름이야기를 찾아 읽었습니다.여름징역에서 벗어나 강물에 발을 담근 그 날. 선생님께서는 전재산을 아이들과 나누셨네요. 사탕 14알, 빵 1개, 껌1개. |
| 2017. 07. 28. 샘터찬물 편지 - 39 |

무더위 속에서 "무더운 여름에 옆 사람과 살을 맞대고 붙어서 잔다는 것은
고역입니다. 당연히 옆 사람이 미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자기도
옆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옆 사람의 죄가 아니고 고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절망적인 것은 자기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에 증오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중 략 - "사회의 생활환경도 열악하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이고 교육, 주거, 주차 등 좁은 공간을 서로 다투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증오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서민들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교도소처럼
동일한 표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 다른
대상과 충돌합니다. 표적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충돌을 야기하는 구조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_<담론> 중에서 습한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계곡, 시원한 파도소리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쉽게 떠날 수 없는 도심 한
복판에서 더위를 이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에어컨을 켜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 주변엔 선풍기조차 없는 이들도 있고, 손쉽게 켜고 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는 주변을 더욱 덥게 만듭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곰을 볼 수 없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경고가 겹쳐집니다. 무엇이든 과잉 소비를 조장하는 문명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밀려오는 무더위에 오늘도 에어컨 버튼을 누르고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나무 한 그루가 그립습니다. 내년
봄엔 더불어 손잡고 느티나무 한 그루 꼭 심어야겠습니다. |
| 2017. 07. 21. 샘터찬물 편지 - 38 |

2017. 07. 21. 샘터찬물 편지-38 몸 움직여 "몸을 움직여 사는 사람은 쓰임새가 헤픈 반면에, 돈을 움직여 사는 사람은 쓰임새가 여물다고 합니다. 그러나 헤프다는 사실 속에는 헤플 수밖에 없는 대단히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 노동에 대한 신뢰입니다. 일해서 벌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간관계입니다. 노동은 대개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어서 인간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일하고 더불어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몸 움직여 사는 사람이 헤프다는 것은 이를테면 구두가 발보다 조금 크다는 합리적인 필요 그 자체일 뿐 결코 인격적 결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헤프다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신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처럼> 중에서 더운 여름날 동료들과 친구들과 시원한 치맥 한 잔 하고픈 '헤픈' 사람들에겐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얘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행동 저변의 이유를 알아내는 노력이 타인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겠지요
폭염 속 지친 마음 '헤픈' 웃음 나누며 함께 이겨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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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440번째 편지 (2025.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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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440회 편지 (2025.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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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308번째 편지(2022. 11. 11) / 고집 센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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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7. 14. 샘터찬물 편지 - 37 |

동굴우상 "동굴에서 사는 사람은 동굴의 아궁이를 동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처지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간추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주관의 양을 조금이라고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가 발 디딜 수 있는 객관적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온당하게 키워 가기 위해서는 저마다 그 '곳'의 고유한 주관에 충실함으로써 오히려 객관의 지평을 열어가는 순서를 밟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로야말로 객관이 빠지기 쉬운 방관과 도피로부터 우리의 생각을 옳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문제는 각자가 발 딛고 있는 그'곳'의 위치와 성격입니다. 동굴의 우상을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동굴의
선택 문제이며 참여점(entry point)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인(仁)에 거(居)하는 것이 아름답다"(里仁爲美)고 한 까닭이 이와 같습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어쩔 수 없어 동굴을 바꾸지 못한 경우라면 자기가 거하는 동굴의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도 동굴의 우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을지...
무더운 여름 새로운 민주정부에게 그 동안 쌓였던 것들이 또는 과거 정부하에서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지켜보는 나의 입장이 '객관'의
입장에 자꾸만 서려하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래저래 많이 더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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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7. 06. 샘터찬물 편지 - 36 |

샘 우리 마을에는 올해같이 심한 가뭄에도 끄떡없는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지심을
꿰뚫고 흐르는 큰 물줄기와 만난 이 샘에는 언제나 싱싱하고 정갈한 생수가 보석처럼 번쩍이고 있습니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아니 그쳐서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가나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에서 장마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예년과는 다르게 마른 장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님처럼
소나기처럼 잠깐 다녀가는 비가 안타깝습니다. 오늘도 매스 미디어로 전해 듣는 뉴스는 팍팍하고 어지럽습니다. 무더위에
시달리고 미사일에 놀라며 수많은 사건사고를 듣고 있는 이 여름을 견딜 일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지심을 꿰뚫고 흐르는 싱싱하고 정갈한 샘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깊은 우물같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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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6. 29. 샘터찬물 편지 - 35 |
무감어수 감어인 (無鑒於水 鑒於人)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얻어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한 그루 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鑒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곧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鑒於人)’.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사업 속에 자신을 세우고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기를 이 금언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어깨동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유교적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일상적으로 남을 의식하고 살아가기를 요구 받는 사회에서 적합한 메세지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감어인'의 긴장과 불편함이
우리를 키우는 양식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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