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터찬물 편지 64번째(2018.01.26) / 빛과 어둠 |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냅니다. 기쁨과 아픔 환희와 비탄은 하나의 창문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인지도 모릅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지혜는 당신의 말처럼 ‘결합의 방법’입니다. 선량하나, 나약하지 않고 냉철하나 비정하지 않고 치열하나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결합의 지혜’ ‘결합의 용기’라고 생각됩니다.
_<나무야, 나무야 > 중에서 Pleasure and pain, joy and grief, all may be contained in the same view seen through the same window. It is in acknowledging both the light and the shadow at the same time, that you find the courage and wisdom with which you can face your life squarely. The shadow derives from the light, and the light is revealed by the shadow. The true meaning of courage and wisdom, as you say, lies in the "way of union". Good-hearted, but not weak-minded. Cool-headed, but not cold-blooded. Confident, but not arrogant. There, you will find both the "wisdom of union" and the "courage of union". (tr. by Orun Kim)
우이선생님 떠나신지 2주기... 며칠 전 선생님 추모전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을 만났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 가는 먼 길에 다 들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떠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生生 하게 살아서 저희 곁에 오십니다. 선량하나, 결코 나약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먼 길 동행하겠습니다. ‘自燈明’ 선생님의 가르침을 스스로의 등불로 삼아 먼 길 밝히며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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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63번째 편지(2018.01.19)/ 떠나는 이의 마음 |

인생살이도 그러하겠지만 더구나 징역살이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단촐한 차림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번 전방 때는 버려도 아까울 것 하나 없는 자질구레한 짐들로 하여 상당히 무거운 이삿짐(?)을 날라야 했습니다.
입방 시간에 쫓기며 무거운 짐을 어깨로 메고 걸어가면서 나는 나를 짓누르는 또 한 덩어리의 육중한 생각을 짐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일은 "머-ㄴ 길"을 떠날 터이니 옷 한벌과 지팡이를 채비해두도록 동자더러 이른 어느 노승이 이튿 날 새벽 지팡이 하나 사립앞에 짚고 풀발선 옷 자락으로 꼿꼿이 선채 숨을 거두 었더라는 그 고결한 임종의 자태가 줄곧 나를 책망 하였습니다.
I believe in simple life. All the simpler in jail, so I could leave it any time with ease. It embarrassed me to find myself burdened once more with a heap of petty things, which I would like to do without, on this transfer to another prison.
On the way to the new prison, as well as the heavy bundle on the shoulders, a weighty thought kept pressing on my mind. A thought about the Old Master who told the attendant boy to prepare a clean gown and a walking stick for a long, long jouney tomorrow morning. At dawn the next morning the Master breathed his last, wearing a crispy gown, slighly leaning on the stick, by the entrance to the hermitage. The sublime posture of his departure was reproving me all the way. (tr. by Orun Kim)
<엽서> 중에서
선생님이 우리곁을 떠나시고 두번째 겨울을 맞았습니다. 노승처럼 지팡이 하나 의지해 "머~ㄴ 길" 가셨지만 숲은 한뼘, 한뼘 무성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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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62번째 편지(2018.01.12/ 더불어숲 |

내가 <더불어숲>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있는 까닭은 그것을 마음속의 그림으로 간직하기 시작했던 곳이 삭막한 감옥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방에서 가끔 읊조리던 <엘 콘도르 파사>의 노래가 계기가 되었다고 기억한다.당시의 심정이 가지 끝을 떠나지 못하는 달팽이와 같았고 한 점에 박혀 있는 못과 같았기 때문이다.그런데 마지막 구절의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 는 반전이 감동이었 다.
길은 참새처럼 훨훨 떠나는 이미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 곳을 지키고 있는 숲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숲이 되어 발밑의 땅을 생각하겠다는 것이었다. 갇혀있던 나로서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비록 떠날 수는 없지만 숲은 만들 수 있겠다는 위로였고 감옥의 가능성이기도 하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발밑의 땅을 생각하며 숲을 키우는 것. 이것은 비단 나만의 감상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I have been growing a particular attachment to the idea of "Forest Together" ever since the image settled down in my soul during the desolate years in prison. The image came from the verses of "El Condor Pasa", which I used to hum to myself in the solitary confinement cells. At the time, I was a snail, unable to leave the tip of the twig, and a nail, stuck to a spot. To such a creature, the reversal to the forest,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was a deeply moving enlightenment.
The street, like the sparrow, has freedom. Yet the singers would rather be a forest, stuck at a location. And feel the earth beneath their feet. Be a forest, and feel the earth beneath, it was a revolutionary vision indeed to a man in confinement. It was a consolation that you can become a forest, though you cannot leave the here and now. It was a new possibility for the prisoner. As I think more of it, it seems to be not only a personal aspiration, but a collective assignment for the society of the time, to be a forest and feel the earth beneath. (tr. by Orun Kim)
<나의 대학시절>에서
신영복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어언 2년. 그리고 올해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30주년이 됩니다. 2주기를 기억하며 사단법인 더불어숲에서 추모식과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오늘은 <더불어숲>을 사랑하셨던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이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어요. 우리 다함께 불러 볼까요, 선생님 귀에 가서 닿을 때까지....
El condor pasa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Away, I'd rather sail away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 It's saddest sound
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I'd rather feel the earth beneath my feet 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못이 되기 보다는 망치가 되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멀리 멀리 떠나고 싶어라. 날아가버린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얽매여 가장 슬픈 소리를 내고 있다네, 가장 슬픈 소리를. 길보다는 숲이 되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지구를 내 발밑에 두어야지.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좋겠지.
"길보다는 숲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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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61번째 편지(2018.01.05)/ 일출 |

태산 일출을 보지 못하고 험한 얼음길을 내려오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산
위에서 떠오르는 해는 진정한 해가 아니다.’ 동해의 일출도, 태산의
일출도 그것이 그냥 떠오르는 어제 저녁의 해라면 그것은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자위 같은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 생각해보면 새로운 아침 해는 우리가 우리들의 힘으로 띄워 올리는 태양이라야 할 것입니다. 어둔
밤을 잠자지 않고 모닥불을 지키듯 끊임없이 불을 지펴 키워낸 태양이 아니라면 그것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못 될 터 입니다. Climbing down the rugged and icy trail of
Taishan after failing to watch the sunrise, I repeated to myself: "There
is nothing particular about the rising sun watched from a mountaintop." It
was an reassurance to myself that, if the rising sun is the same one that went
down last evening, it could not be 'new' at all, whether it is watched from an
East Coast beach or from the top of Taishan. On the other hand, the truly 'new' morning
sun should be the one raised up by the force of our wishes. To be able to watch
it, we should have kept up through the dark night trying to add to it the heat of our minds, in the way we take care of a bonfire. (tr. by Orun Kim) <더불어숲> 중에서 무술년 새아침 새해가 떠올랐습니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낡은 것들을 청산하며 맞이하는 새해는 어제보다 다른 오늘을 기대하며,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맞이했던 30년 전 그날을 떠올려 봅니다. 과연, 오늘의 태양은 30년
전 그날의 태양보다 새로운 것이었나?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 청년실업과 세대간 불평등, 빈부격차 심화 등등 산적한 과제들이 엄습해 오지만 가슴에 품은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횃불이 되고, 횃불이 모여 모이면 태양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새해 새아침에는
함께 바다로 가는 꿈을 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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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60번째 편지(2017.12.29)/ 새해 |

새해가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건너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낡은 것으로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1984년 12월 28일 대전에서-
A new year begins right in the middle of
the winter, maybe, so as to keep certain things f rom dragging on. To be new,
you have to depart from some old things. In the deepest of the winter, the
remorseless cold will be of some help in cutting off the past. At the end of a year, it is wisdom that
allows us to forget the painful things of the past year. And it is courage that
enables us to preserve some of them. In the middle of the winter, with a new
year ahead, I keep wondering which things to cut off, which things to forget, and which things to preserve.(tr. by Orun Kim)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정유년을 보내고 무술년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정유년은 우리 모두에게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한 해였습니다. 우리가 결별하고 가차없이 잘라버려야 할 낡은
것들...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할 용기가 필요한 세모(歲暮)입니다. 반성과 성찰로 곤이지지(困而知之: 곤경을 당하면 깨달음을 얻는다.)하는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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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9번째 편지(2017.12.22)/ 여행 |

여행은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城)밖으로 걸어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은 떠나는 것도,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여행은 돌아옴(歸) 입니다. 자기자신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일 뿐입니다. A journey consists of a departure and an encounter. A departure is walking out from one's own realm, and an encounter is getting associated with strangers. But neither is the real essence of a journey. It is a return, a return to our honest selves and to our sore wounds. (tr. by Orun Kim)
<처음처럼> 중에서 공자, 석가, 노자, 예수... 그 분들도 길 위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만났고 치유하며, 깨달음을 얻고 또한 나누었습니다. 나의 여행은 떠나기 전에 언제나 설레임과 두려움이 동반합니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가진 편협한 사고(思考)의 틀을 깨트리는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올 한 해, 삶의 여정은 어떠셨는지요... 자신을 돌아봄으로,
변화하고 나아가는 새해로 떠나는 멋진 여행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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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8번째 편지(2017.12.15)/ 일년의 끝자락에서 세우는 각오 |

잡사(雜事)에 부대끼 면서도 자기의 영역(領域)은 줄곧 확실하게 지켜야 하는 법인데 그간의 징역살이도 모자라 여태 이력이 나지 않았다면 이는 필시 저의 굳지 못한 심지(心地)와 약한 비위(脾胃)의 소치라 부끄러워 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월이 아직 남았으니 그 전에 서서히 제자신을 다그쳐서 무릎꿇고 사는 세월이 더는 욕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警戒)하겠습니다.
On the decline of a year in prison
Whatever mundane things your life may be filled with, you must not ever lose the grip on your own realm. If the time here has not disciplined me enough for that, I cannot but feel ashamed of the frailty of my will and the limits of my aptitude.
Yet October is not all over. While in it, I will tighten myself steadily, so that life in this kneeling posture will no more be so shameful.(tr. by Orun Kim)
_<엽서> 중에서
개인이든 역사든 올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결코 순탄한 한해가 아니였습니다.
담배 끊겠다는 각오, 술 줄이겠다는 맹세,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서약, 올해 벽두에 세웠던 계획과 마음가짐이 모두 실천되어 지지는 못했겠지만 2018년 한해는 자신을 다그쳐 스스로를 경계(警戒)하는 해가 되는 각오를 노을지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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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7번째 편지(2017.12.08)/ 공부 |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란 책상 앞에 앉아서 텍스트를 읽고 밑줄을 그어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상 위에 올라서서 더 멀리,더 넓게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 입니다. 책상은 그것을 위한 디딤돌일 뿐입니다. 모든 시대의 책상은 당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장치입니다. 책상 위에 올라서는 것은 '독립'입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변화와 저항입니다. 그리고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입니다." Scholarship is not sitting at the table, reading texts and underlining points to memorize. It is standing on it, trying to look beyond the texts and think more widely. The table is only a platform for the scholarship. The table is a device for injecting the currently prevailing ideology into your mind. "Independence of mind" is achieved by stepping on it. Then you can start anew. Change and resistance will become possible. "Resistance is none other than creation, and creation none other than resistance". (tr. by Orun Kim) _<처음처럼> 2016년판에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은 스스로 책상 위에 올라가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그 이유를. "나는 끊임없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책상 위에 서 있는거다." 올해 수능을 치르고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응원합니다. 비록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 한 번의 용기로 세상과 맞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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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6번째 편지(2017.12.01)/ 겨울나무 별 |

겨울은 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삭풍 속에 서 있는 나목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한 해를 돌이켜보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겨울밤 나목 밑에 서서 나목의 가지 끝에 잎 대신 별을 달아 봅니다. Winter is the time for stars. As I gaze at the stars, I turn into a naked tree standing in the biting wind. Winter is the time we look back on the year past, and also look forward to the coming spring. Standing under a tree in a winter night, my mind is sewing leaves of stars to the bare twigs. (tr. by Orun Kim) <처음처럼_신영복의 언약> 중에서 가을이 저물고 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김장을 담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겨울을 준비합니다. 한 해를 돌이켜보며 마음속에 싸였던 묵은 감정은 떨구고 함께 만날 바다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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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5번째 편지(2017.11.24)/ 인도(人道)와 예도(藝道) |

저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 하기에 앞서 붓을 잡는 자세를 성실히 함으로써 먼저 뜻과 품성을 닦는 오히려 「먼 길」을 걸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뜻과 품성이 비로소 훌륭한 글씨와 그림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도(人道)는 예도(藝道)의 장엽(長葉)을 뻗는 심근(深根)인 것을. 예도(藝道)는 인도(人道)의 대하(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그리하여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I do not exert myself to produce a good work. I just try to hold the brush in a proper way, in which I can pull together my intention and posture, as if I were preparing myself for a "long journey". Then I let my intention and posture lead me to a work of writing or drawing. I try never to forget that the human nature is the deep root from which all the leaves and flowers of arts grow out. That arts are tributaries to the big river of the human nature. And that the most prescious of all artworks are "good men" and "good histories".(tr. by Orun Kim) <엽서>중에서 대전교도소 1976년7월5일 35세
선생님의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소동파(蘇東坡)가 추구한 도예병진(道藝竝進:도와 재주가 함께 나아간다)의 정신을 함께 되새기게 됩니다. 붓글씨를 쓴지 어느덧 20여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붓을 잡는 동안에는 深根과 大河를 마음에 두고, 나의 글씨가 더 「훌륭한 人間」, 더 「훌륭한 歷史」 를 돕도록 성실히 「먼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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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4번째 편지(2017.11.16)/ 구도求道는 |

“구도求道에는 언제나 고행苦行이 따릅니다. 구도의 도정에는 목표가 없습니다. 고행의 총화가 곧 목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도는 곡선이기를 원하고 더디기를 원합니다. 구도는 도로의 논리가 아니라 길의 마음입니다. 도로는 속도와 효율성이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이며 길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동행하는 인간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매일 직선을 달리고 있지만 동물들은 맹수에게 쫓길 때가 아니면 결코 직선으로 달리는 법이 없습니다.” Search for the truth is always accompanied by pains. There is no definite goal for the search, no other goal than the pains themselves. That is why the search has to proceed slowly, along a bending course. A trail path, not a highway, leads us to the truth. The capitalist logic of the highway is ruled by speed and efficiency, while the humanist spirit of the trail path is filled with beauty and pleasure. We run along straight lines everyday on highways. But an animal in the natural state never runs along straight lines, except when it has a predator behind it.(tr. by Orun Kim) - 신영복, 『처음처럼』, 돌베개, 114쪽. 모든 자연自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어집니다. 무엇이 성공인지도 모르는 채 직선으로 허겁지겁 달려온 이 시대의 현실 물질은 더 풍요로울지 모르나 행복은 더욱 먼 일이 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진정한 삶의 길은 힘들더라도 스스로를 잘 지켜내며 좀 더디게 가더라도 가고 있는 길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나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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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3번째 편지(2017.11.10)/ 장날이 오면 |

장날이 오면 돈을 쥐지 못해도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장을 「보러」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고작 물이 진 생선 몇 마리를 들고 돌아오지만, 저마다 제법 푸짐한 見聞들을 안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 견문들은 오래 오래 화제에 오르내리며 무수히 반추되는 동안에 그것은 시골의 文化가 되어 간다. 이 화려한 견문으로 해서 자신들의 빈한한 처지를 서러워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 처지를 改造하려는 사람도 없다. 싸고 좋은 물건이 많이 생산되어서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비록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척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메마르고 자그마한 생활이지만 그들은 이것을 소(牛)처럼 되씹고 되씹어 반추함으로써 마치 흙내음처럼 결코 부패하지 않는 풋풋한 삶의 生氣를 마시며 살아가는 것이다. When we go to the market, we say that we are going to "have a look at the market". Villagers go to town on the market-day with light heart, without caring how much money they have in their pockets. On the way back, while only a string of small fish is carried in the market-looker's hands, an abundance of novel stories are carried in his mind. These stories, after being repeated among the villagers for numberless times, become part of the village culture. The glorious contents of the stories do not make the villagers feel sorry about their humble way of life. Even if the increase of cheap and useful commodoties falls short of affecting their own lives, it is a good piece of news all the same, that the world is becoming a more comfortable place. However simple and poor their way of life may be, they keep chewing and rechewing it like cattle, and extract from it fresh vitality for their lives. Vitality which, like the smell of earth, never decays. (영문번역 김기협) _너른마당 출판 <엽서> 중에서 지난해 본의 아니게 잘 뚫린 서울을 향해 난 길을 따라 나들이들 자주 했다. 한 낮에 들어가 깊은 밤에 돌아 나오는 여정은 곧은길 덕분이었다. 그래서 시골은 더 이상 서울의 최고 높은 빌딩을 봤니 못봤니 하는 문제로 다투는 그 시절의 시골이 아니다. 고작 물이 진 생선 몇 마리가 손에 들린 전부일지라도, 푸짐한 견문을 안고 돌아와 반추하며 흙내음처럼 풋풋한 생기를 불어 넣는 삶이 있는 장터의 시골을 시골사람이 그리워한다.
정선에서 |
| 샘터찬물 52번째 편지(2017.11.03)/ 깨달음 |

"깨달음은 바깥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고, 안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성찰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깨달음이란 게 우리가 느끼는 가장 깊이 있는 행복이지요. 무기수는 하루가 빨리 간다고 별로 좋을 게 없잖아요. 다만 오늘 하루가 보람 있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지요. 그 보람이란 게 사람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제 경우는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하면서 스스로가 아주 새롭게 변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기약 없는 세월 속에서 유일한 보람이었지요." "Revelation leads us, outwardly, to a new awareness of the world, and inwardly, to a fresh reflection of ourselves. Such revelation is the most real happiness allowed for us, I came to think. To a prisoner serving a life sentence, the length of a day makes hardly any difference. All that matters is, how meaningful it is. I could make my days meaningful by seeking revelations of the world and of human beings, through which I experienced repeated renewals of myself. It was the only meaningful thing I could do, in the middle of the meaningless flow of time" _<모든 이가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다> 중에서. 선생님께서 2015년 10월 26일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 웹진 <다들>과 인터뷰를 하셨지요.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 20년 감옥생활을 견딘 힘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공부는 망치로 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갇혀있는 자기의 문맥에서 탈출하고 변방의 창조성으로 다시 시작하라고도 하셨지요. 우리는 늘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짧은 글 속에서 긴 생각 길어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어지러운 꿈은 샘터 찬물로 씻어내고 오늘 하루도 보람있게 행복하게 살아보겠습니다.
*추신 : 이번 편지부터 우이선생님의 글을 영문으로 번역한 내용도 함께 보냅니다. 다른 언어를 통해 더 풍부하게 선생님의 글을 이해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번역을 위해 애써주시는 김기협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 샘터찬물 51번째 편지(2017.10.27)/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 |

오늘 햇볕과 평화의 땅에서 추모비를 마주하는 마음이 당혹스럽다. 더구나 이세종 열사의 추모비는 거기 새겨진 비문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김성숙 선생은 학우였던 이세종의 마음이 되어 이 비문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이세종 열사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너무나 푸른 가을 하늘이 차라리 슬픔이었다. 오늘 추모비 앞에 모인 당시의 학우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30년이 지난 아픔이 한결 가셨을 법도 하건만, 반가운 인사마저 서로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단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면할 수 없었던 세월이었다. 국회의원, 시의원에서부터 교사와 일용직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걸어온 길이 한결같지 않지만, 학창 시설의 우정과 이상이 어떻게 굴절되고 부침하였는지 돌이켜보면 30년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든다. _<변방을 찾아서>중에서 아픈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망각과 치유를 하기 마련이지만, 1980.5.18. 광주는 가슴 깊은 곳 아물지 않는 상처입니다. 무고한 시민을 향해 헬기와 탱크를 동원해서 무차별 발포하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조직적으로 진실을 은폐했던 지난 과거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실은 감출 수 없는 생명입니다. 군화 발에 짓밟히고 왜곡되고 날조되었던 그날의 진실이 바로 잡히길 기대합니다.
억울하게 스러져갔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 맑은 하늘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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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찬물 50번째 편지(2017.10.20)/ 추억이란 |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연을 계기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거듭할수록 우연이 인연으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리라.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도 우연한 조우가 아니라 인연의 끈을 따라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필연임을 깨닫는다"
_<변방을 찾아서> p.17 길을 걷다가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등을 만나듯이 나는 1주일에도 몇 번씩 밥 먹고 양치질을 하다가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는 누군가를 추억으로 만납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저에게 이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인석씨, 밥을 먹고 난 뒤 양치질을 너무 일찍 하게 되면 입 안에서 생기는 음식물 소화액이 줄어들어 좋지 않아" 라고 말입니다.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양치질을 할 때마다 문득문득 그를 만납니다. 가을이 되면 그가 그립습니다. 참 그립습니다... |
| 샘터찬물 49번째 편지(2017.10.13)/ 화이부동(和而不同) |

화이부동(和而不同) "나는 통일統一을 '通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평화정착, 교류 협력만 확실하게 다져 나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화정착, 교류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입니다. 통일通一이 일단 이루어지면 그것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통일統一로 가는 길은 결코 험난하지 않습니다.“ _<담론> 중에서 읽어볼수록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지난 10년여간의 불통이 오늘의 이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어 민족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이 격언이 이 땅 모든 이의 가슴에 굳건히 자리하길 빌고 또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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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29. 샘터찬물 편지 - 48 |

한솥밥 (A big table in the yard)
대문을 열어놓고 두레상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나누는 정경은 지금은 사라진 옛그림입니다.
솥도 없고 아궁이도 없습니다. 더구나 두레상이 없습니다. '한솥밥'은 되찾아야 할 삶의 근본입니다. 평화는 밥을 고르게 나누어 먹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쌀(禾)을 고루나누어(平) 먹는 (口)것이 '평화(平和)'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With the gate wide open, seated around a big table in the yard, eating together from a huge iron cauldron... " A scene that can be seen no more. No more huge cauldrons. No more furnaces to hold the cauldrons. And sorriest of all, no more big tables in the yard. The rice cauldron is the basis of life to be restored.
Peace begins at eating together. The meaning of peace lies in sharing the rice fairly.
_<신영복의 언약> 28화 / 번역- 역사학자 김기협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징검다리를 이은 긴 휴가에도 날은 덥고 평화는 없습니다 올해는 '한솥밥'을 되찾고 싶습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리운 사람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모두 평화가 깃든 한가위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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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23. 샘터찬물 편지 - 47 |

환절기에 찾아오는 감기
환절기에는 거의 빠짐없이 감기 한 차례씩 겪습니다. 감기는 물론 걸리지 않는 편이 좋지만 걸리더라도 별 대수로울 것이 없습니다. 빤히 아는 상대를 만난 듯 며칠짜리의 어떤 증세를 가진 것인지 대강 짐작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때뿐이고 속만 긁는 감기약 먹는 법 없습니다. 신열과 몇 가지의 증세, 그리고 심한 피로감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잔 먹은 주기(酒氣)를 느끼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감기가 허락하는 며칠간의 게으름만은 무척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배짱으로 책은 물론 자잘한 일상적 규칙이나 이목들도 몰라라 하고 편한 생각들로만 빈둥거리는 며칠간의 게으름은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닙니다. 징역살이에는 몸 아플 때가 제일 서럽다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감기 핑계로 누리는 게으름은 도리어 징역 속의 긴장감을 상당히 느꾸어줍니다. 특히 회복기의 얼마 동안은 몸 구석구석에 고였던 나른한 피로감 대신 생동하는 활력이 차오르면서 머리 속이 한없이 맑은 정신 상태가 됩니다. 이 명쾌한 정신 상태는 그동안의 방종을 갚고도 남을 사색과 통찰과 정돈을 가능케 해줍니다. 환절기의 감기는 편한 잠자리의 숙면처럼 그 자체가 깨끗한 휴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아침, 또 하나의 출발을 약속합니다.
_<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감기로 며칠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플 겨를도 없이 바쁜 시간이건만 이내 몸이 견디지 못하고 그만 고장이 났습니다. 어쩌면 쉬어 가고 싶은 마음 한 자락 들켜 몸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록이 지쳐 단풍들어간다는 가을 초입,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잠시 일상을 내려두고 쉬어 가시길 권합니다. 쉼으로 새로운 아침, 새 출발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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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15. 샘터찬물 편지 - 46 |

초상화 그리기 자유롭고 올바른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문맥을 벗어나야 합니다. 문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갇혀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당대의 문맥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중세 천년동안 마녀 문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우리시대의 문맥을 깨달아야 합니다. 탈문맥과 탈주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진리입니다. _네이버포스트 <신영복의
언약> 제22화 적폐를 청산하고자 함은 갇혀있는 우리시대의 문맥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서 시작된 일이겠지요? 그러나 모두의 뜻을 모아 함께 달려보려는 꿈은 먼 훗날에나 이루어질 일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대단한 사람이 탈문맥과 탈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탈문맥과 탈주를 해내는 사람이 대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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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09. 08. 샘터찬물 편지 - 45 |

평화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의
시)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_<처음처럼> 중에서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주제입니다. 평화,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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