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샘터찬물 451번째 편지] 관계의 조직 -심은희 (2025.09.05)2025-09-05 13:01
작성자

[샘터찬물 451번째 편지]

                                                관계의 조직

‘관계의 조직’이란 의미를 조금 더 설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관계론이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존재론과 대비해 왔습니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본질에 있어서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생성입니다. 관계의 조직은 존재를 생성으로 탄생시키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그리고 생성은 화화(和化)의 경로를 따라 탈주하는 것입니다. 탈주는 끊임없는 해체와 새로운 조직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관계’를 일반적 의미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과연 존재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물들이 맺고 있는 얼개 자체에 존재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어떠한 사물이든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를 관계라는 객관적 얼개 속으로 해소시키는 것 역시 관념론이 됩니다.

                                          신영복 『담론』 198쪽


우리가 사용해 온 관계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선생님은 관계의 정확한 의미를 ‘관계의 조직’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존재는 관계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모든 존재를

관계라는 객관적 얼개 속으로 해소시키는 것을 관념론이라고 비판하셨지요.

관계는 고정불변의 존재도, 관계망 그 자체도 아닌 ‘관계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구성이란 말보다 조직이란 말을 더 선호하신 듯합니다.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진 관계망을 보다 잘 표현하고,

단단한 주체의 능동성을 함의하는 데 더 적합해 보입니다.

데리다가 사랑 없이는 해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듯 해체 없이는 조직도 불가능합니다.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가만히 있으란 요구에 응하는 것은,

동(同)에 기초하여 고정불변의 존재로 존속(存續)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관계를 해체하고 우리 자신을 전체 맥락 속에 새롭게 위치시켜야 존재가 생성될 수 있습니다.

화(和)는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똘레랑스입니다.

이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화화(和化), 변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체적으로 수많은 관계를 재구성하고 해체하면서 탈주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낡은 것에 대해 냉철하게 각성하고 그것으로부터 과감히 결별’하며 변방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 내고 키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졸렬하지만 성실한 삶’을 부단히 살아가야 합니다.

꽃과 열매는 먼 훗날, 먼 미래의 것입니다. 이 또한 ‘관계의 조직’입니다.

                                            더불어숲 회원 심은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