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동으로 채워진 숲길 류 동 림 자주 가는 집 근처 수목원에서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못 보던 길이 나타났다. 수목원 후문에 들어서면 오른쪽 방향으로 길이 나 있어서 그 쪽으로만 갔었고 왼쪽엔 갈 곳이 없었는데, 왼쪽에 있는 동산의 숲길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건성이라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십상인 자세로 외진 곳에 보석처럼 숨어 있던 것이 내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숲길 초입에 <더불어 숲길>이라고 쓰여진 아담한 팻말이 조용히 서 있었다. 제목이든 모양새든 숲길 안내 팻말이라기 보단 마치 인생의 길잡이 같은 느낌이 났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성공회대에서 교수로 오래 근무했던 故 신 영복 선생을 기리기 위해 수목원에서 바로 옆 성공회대 뒤편 동산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구로구, 성공회대, 사단법인 더불어 숲이 공동으로 만들었고, ‘더불어 숲길’이라는 이름은 신 선생의 저서 ‘더불어 숲’에서 따왔다. 산책로 옆엔 신 교수가 생전에 직접 쓰고 그린 서화(書畫) 작품 31편이 운치 있는 안내판 형식으로 제작되어 늘어서 있어서, 산보를 하면서 동시에 시와 그림을 음미하고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배려가 돼 있었다. 낮은 산비탈 한자락일 망정 고마웠다. 더불어 숲길이 거대한 산에 조성돼 있다면 선생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사양하실 것만 같다. < ‘더불어 숲’에는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을 지키자고 .> 글 내용도 좋지만 선생의 글씨체도 눈에 깊이 박힌다. 전에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고 그 진솔함에 감동했었는데, 선생이 직접 그린 서화의 시각적인 아름다움도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뜯어볼수록 볼 맛이 나는 힘차고 개성이 강한 서체는 그 분의 인품까지 아우르고 있는 듯 했다. 그림 역시 자연스러움과 해학이 어깨동무 하고 있는 품이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더 오르다 보면 다리를 쉬고 싶을 때 쯤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여있다. 앉는 자리에 <배려 소통 화합<이라는 구로구청의 캐치 프레지가 선명한 글씨로 써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가장 편한 자세로 오래 볼 수 있는 위치에 선생의 혼과 철학이 밴 글귀가 적혀 있었다. <향 싼 종이에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는 어느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향내가 솔솔 풍기는 글이었다. 그 후로도 올라갈 때마다 여러 번 보게 되는 글귀지만, 볼 때마다 향 싼 종이 같다. 내가 접해온 여러 사람들의 내면과 느낌을 끄집어내어 생각하게 된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면서 신 선생의 서화 30여 점을 모조리 읽으며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나간다. 마지막 장은 내리막길 끝에 있는 철로에 이르렀을 때 끝이 난다. <함께 맞는 비>라는 제목 하에 이런 글이 씌어있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쉬운 선심보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의미임을 깨달은 건 한 세 번째쯤 본 뒤였다. 선생께서 오래 몸담았던 대학교가 내가 사는 마을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게 반갑고 뿌듯하다. 내가 사는 빌라에는 선생을 존경하는 팬이 몇 사람 살고 있어서 우리들은 약속을 했었다. 적당한 때를 잡아 선생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고 좋은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자고. 그러나 적당한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 두해 미루다가 2016년 1월 15일 선생의 부음을 듣고는 망연자실했다. 오늘도 <더불어 숲길>을 걸으며 선생을 생각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선생의 글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그분의 진정성이 내 마음속 부족한 공간을 채워준다. 그 리고 선생께서 내가 사는 곳과 바로 가까운 이 대학 뒷동산 근처를 수 십 년간 거닐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선생이 이 동산에서 호흡한 숨이 얼마나 될까. 오래 전 과학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차 통영에 갔다가 이 장군의 숨이 지금도 공기 중에 있을까 라는 이야기를 화제로 삼았다고 한다.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면 이순신 장군이 들이마셨다가 뱉은 공기 분자 중 상당수를 현대의 우리가 지금 이 순간도 들이마신다고 했단다. 수백 년 전 사람도 그럴진대, 우리 동네에서 20여 년간 근무했고 세상을 뜬지 얼마 안 되는 신영복 선생이 마셨다 내뱉은 공기 분자는 그보다 훨씬 많이 내 근처에 있다는 얘기 아닌가. 진솔한 영혼을 가진 선생의 폐부에 들어가 잠깐이나마 머물다 나온 숨결을 나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위안이 된다. 내가 더불어 숲길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대개 해질녘이고 노을이 고을 때다. 그 시간이 하루 중에 햇살이 가장 곱게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붉은색 빛이 산란을 통해 강렬하게 내려오기 때문에 일출보다 일몰에 감정이 풍부해진다고도 한다. 신영복 선생의 글씨, 그림, 그리고 글 내용을 통해 눈과 마음을 정화시킨 뒤에 저녁노을이 주는 황홀경에 취해서 더 풍족해진 행복감을 한 아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