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조희연교육감께서 페이스북에 올려주신 창립대회 후기입니다. ---------------------------------------------------------------------------------------------------------------------------------------------------------------- 사단법인 ‘더불어숲'이 창립되는 시점에 신영복샘의 <담론>을 다시 펼치며 지난 일요일 오후, 남산 국악당에서 열린 사단법인 ‘더불어숲'의 창립대회에 다녀왔다. 창립선언문은 "1988년 우이 신영복 선생께서 간난신고의 20년 감옥생활을 끝내고 출소하시자, 옥중서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감명 받은 많은 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더불어숲’의 모태"가 되었으며, 2016년 1월 타계한 지금, "신영복 선생의 뜻과 정신을 더 깊게, 더 넓게, 더 오래도록 이어가고자" 사단법인을 만든다고 쓰고 있다.
그동안도 '신영복 저서 읽기 모임'인 <마중물>이 있었고, '신영복 연구모임'인 <언약> 등이 있었는데, 이제 사단법인은 본격적으로 '선생의 사상의 소개 및 공유'를 위해 더불어숲 교실을 운영하며, '선생의 글씨를 통해 만나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이해'를 위해 '변방기행'을 계획하고 있다(그의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을 상기해보자). ‘신영복 아카이브’도 만들고, 그의 호를 따라 '우이학당'을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 ‘더불어숲’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신영복 선생이 1989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재직한 성공회대에서, 선생을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며 선생이 가장 신뢰했던 '더숲트리오' 교수중창단 선생들(김창남, 김진업, 박경태: 이 중 김창남 선생이 사단법인의 이사장을 맡았다)에 비해서 나는 한참 '눈 밖'에 나 있었고, 선생이 지도하는 '서예반'에서 붓글씨를 가장 ‘못 그리는'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25년여를 선생 곁에서 그를 지켜볼 수 있었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숲에 대한 자세한 출범기사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http://m.news.naver.com/read.nhn…
그는 20년 20일 동안 감옥 생활을 하다가,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1년 후인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2006년 정년퇴임한 이후에는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마지막 무렵에는 학부 강의 하나, 대학원 강의 하나를 맡았다. 이 책은 그의 마지막 강의인 2014년 가을의 마지막 수업의 녹취에 기초한 재정리를 통해서 탄생했다. 그의 빛나는 강의는 그가 이야기하듯 ‘세계인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 깊은 지혜를 전해주는 강의이기 때문에, 그가 강의를 종결한다고 했을 때, 모든 교수들이 애원하듯이 강의를 지속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지속되지 않았고, 2016년 1월 15일 그를 먼 세상으로 떠나보냈고, 그의 강의의 부재로 인한 공백을, 이 <담론> 책의 출판으로 달래지 않을 수 없다.
사색, 강의, 그리고 담론 선생은 수많은 책을 냈지만, 핵심저작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본>라고 생각된다. 그의 마지막 저작이기도 한 <담론>은 그의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사색>은 감옥 안에서 쓰여진 것이다. 담론에서는 사색의 이야기들이 다시 재론되지만, 그것은 출옥 이후 매일 대면하며 살아가는 현재적, 사회적 삶과의 대비 속에서 다시 빗어진 지혜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가 단지 일상 생활의 사색자만이 아니라, 동양고전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합되면서 신영복만의 독특한 철학사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감옥과 신영복 사상의 관계 그는 자신이 오랜 기간 감옥에 있지 않았다면 다양한 동양고전을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오랜 기간 사색과 같은 사고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색과 <강의>에서 서술된 동양고전에 대한 독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감옥을 사회학 교실이자, 역사학 교실, 인간학 교실로써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감옥은 바깥에 있었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회 현장이었다. 또한 그에게 감옥은 근현대사의 격변의 역사를 몸으로 살아내고, 그 다양한 역사적 기억들을 담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현장이기도 했다.
그에게 감옥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축소판’ 사회이다. 그는 이 독특한 미시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의 지혜와 철학을 만들었다. 그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사실 푸코의 논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회는 감옥처럼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가 사회를 미시사회, 미시 인간공동체로 살아내고, 사회 세계에 대한 통찰과 인간 이해에 대한 깊은 지혜를 끌어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작업, 식사, 세면 등 협소한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때로 반목과 불신, 언쟁과 주먹다짐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팔만대장경인 복잡한 미시세계 속에서, 그는 사회와 세계를 만났고, 인간을 만났다. 그에게 감옥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복잡한 내면을 갖는 다종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장이었다. 그의 책의 위대함은 바로 감옥이라는 ‘미시세계’ 속에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길어올린 데 있었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노랑머리 창녀, 목수, 떡신자, 목사, 노인,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매혈청년 등 무수한 삶의 군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삶과의 대면 속에서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감옥에서 마주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그의 통찰의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옆 사람과 살을 맞대고 붙어서 잔다는 것이 고역이자 형벌로 느껴지는 여름 감방”의 풍경에 대한 묘사였다. 그러면서 그는 당연히 옆 사람이 미워지고, 더욱 절망적인 것은 자기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에 증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하는 겨울이 그래도 “가장 가까운 옆 사람을 증오하지 않고 따뜻하게 만날 수 있음으로, 최대의 은혜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인간과 구조, 구조와 인간의 관계, 구조 속에서의 인간의 삶에 대해 이처럼 깊은 여운을 주는 사색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나는 했다. 이 예를 읽으면서, 나는 전율 같은 것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의 관계론, 변방론,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시선 나는 그의 동양고전 독해나 인간이해와 자기성찰이 3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관계론적 인식론이다. 다음으로는 공간적 위치 설정이라는 점에서 ‘변방의 시좌’이며, 셋째는 사회적 약자의 시선이다. 이 3가지의 인식론, 시좌, 시선이 만나서, 신영복만의 지혜가 출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계다’라고 주장한다. 주역에서 그는 존재론적 철학을 발견한다. 아가가 변방은 중심에서 발화되지 않는 창조적 상상력의 공간이다. 기존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으로 중심부 콤플렉스를 벗어던져야 한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권력과 패권의 공간에서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재해석한다. 그가 감옥에서 만난 많은 인간 군상들, 그리고 그들의 남루함과 허세와 비루함을 속에서, 그가 살아온 배경과 조건을 본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노랑머리 창녀, 떡신자, 찬물을 먹고 피를 팔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인간성과 인간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는 사색과 애정에 기초하여 바라보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단지 타자로서 애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좌에서 세상을 보고자 한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책에 나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혜 중에서, 몇 가지만 적어보자. 선생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과 운동의 전략적 지침이 무엇일까 할 때, 나는 그가 ‘장기수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이 그의 권면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는 20, 30년 복역한 장기수 할아버지가 굴원만큼이나 비타협적인 분이었으나, 출소를 앞두고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고 조언하는 삽화를 책 속에서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실천을 ’우경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일해야 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전통과 주어진 현실의 조건 속에서 실천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대에 여전히 변화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실천방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동양고전에 대한 강의에서는 신영복만의 독특한 독해가 이루어진다. 그가 맹자를 ‘관계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읽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맹자에 나오는 ‘곡속장’이라고 하는 예화를 그는, 본다는 것은 만나고 대면하는 것이고 서로를 아는 것이며, 그 관계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으로 읽는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선왕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그 소가 불쌍해서 양으로 바꾸라고 하는 일화를 들고 있다. 소를 대면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대면적으로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 양이나 동일하지만 그런 관계가 우리의 태도를 변화하게 만든다.
그는 한비자를 읽으면서, 전국시대 법가(法家)의 한 원칙, 즉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형(刑)으로 다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사대부 이상은 예로, 서민들은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관례이었다고 말한다. 이 점은 오늘날도 동일할 것이다. 정치, 경제사범은 불법행위자로 그의 행위만을 문제 삼는 반면에, 절도나 강도와 같은 일반사범은 범죄인으로 그 인간 자체를 범죄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햇볕에서 그가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데, ‘헬조선’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의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남한산성’의 경험이다. 그는 사형에 의한 죽음과 죽음의 공포로 뒤덮여 있는 남한산성 감옥에서, 길어야 2시간 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이 살아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겨울 독방의 작은 햇볕이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생명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예를 들으면서 숙연했다. 그가 감옥에서 햇볕에서 자살을 넘어선 끈기 있는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할 때, 어찌 우리가 ‘헬조선’이라고 하는 깊은 좌절의 상황에 직면하여 그래도 우리가 처연한 희망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끝도 없고 기약도 없는 긴 터널과 같은 감옥에서 생명의 환희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무엇인가. 그가 그 긴 터널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역사를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인간을 배우고, 그리고 또 새로운 삶의 지혜를 빚어냈다면 우리에게 그 책무는 없겠는가. 책의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그는 저 하늘에서 우리에게 매일매일 깨달음과 공부를 살아가는 이유로 삼는 삶을 권면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의 지식인의 한계에 대한 고뇌 마지막으로, 가끔 나는 그의 내면에 고뇌와 파장을 일으키는 사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곤 한다. 아마도 그는 이론과 실천의 거리, 먹물 지식인과 민중의 긴장과 거리를 언제나 마음에 두고, 그것을 메우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고뇌의 소재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주춧돌부터 그리는 감옥에서 만난 목수와 대비해 지붕부터 그리는 자신을 책망하는 것에서,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되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는 장기수 할아버지의 출옥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이나, 그의 생의 말미에 ‘하방연대’를 이야기한 것이나,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그리고 다시 ‘가슴으로부터 발로의 여행’ 이 가장 길다고 한 것에서, 그는 부단히 민중과 분리되어 있는 지식인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 인간다운 대안적 사회로 가는 도정에서의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깊은 고민과 딜레마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더불어숲이 많은 활동을 하게 되면, 우리는 신영복의 삶과 사상에 대해 더욱 다양한 이해와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기대하고 있다.
http://m.segye.com/view/201605160032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