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찬물 449번째 편지]
돕는다는 것은 그 정이 같아야
‘함께 맞는 비’는 돕는다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또 물질적인 경우에도 그 정이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처음 이 글을 서예작품으로 전시했을 때 반론도 없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돕는 것이지 있는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비를 맞으며 걸어간 경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혼자 비를 맞고 가면 참 처량합니다. 그렇지만 친구와 함께 비 맞으며 걸어가면 덜 처량합니다. 제법 장난기까지 동합니다. 작품에는 그림도 그려 넣었습니다. 빗줄기를 그리고 그 가운데 빨간 줄을 하나 넣습니다. 우산을 접고 빗속으로 들어갔다는 뜻으로 그렇게 그렸습니다. ‘함께 맞는 비’를 붓글씨로 쓰면서 ‘함’자의 ‘ㅁ’과 ‘맞’자의 ‘ㅁ’을 공유하도록 쓰기도 합니다.
신영복 <담론> 중에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건물에 제 일터가 있습니다. 시설물의 노후화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 중에서도 낡은 배관의 누수가 가장 골치가 아픕니다. 집중호우가 내린 며칠 전에는 일터의 내부를 지나가는 우수관에서 누수가 발생해 천정에서 물이 쏟아져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상수, 소방, 우수, 오수 등 각종 배관에서 물이 샐 때마다 A는 배관 기술자가 아니지만 시설물 관리가 담당업무의 하나라서 누구보다 바쁩니다. 때론 조치 작업을 하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합니다. 하루는 누수 배관 보수 작업 현장에서 후배인 B와 평소 사이가 나쁜 A가 저에게 그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였습니다. 정년퇴직을 앞둔 자신보다 더 오래 근무할 B가 시설관리 업무를 담당해야 하지만 B는 그 일을 회피하고 누수 현장조차 와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A는 B가 법학 전공인 것도, 디스크 질환이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B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배관 보수와 관련해 아무런 지식도 없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기에 그동안 전혀 현장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A는 B에게 자신을 대신해 일을 하거나 자신과 같은 작업 참여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급박한 현장에서 확신이 서지 않은 해결 방안의 결정할 때 함께 의견을 나누거나 사소하지만 잠깐 손이 아쉬운 일이라도 함께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일터에서 분업화와 개인주의 정서가 만연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녹슬고 갈라진 낡은 배관처럼 금이 간 관계를 새롭게 하도록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에 관한 이야기를 그들과 함께 나눠봐야겠습니다.
[더불어숲 회원 노병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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